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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토피아, 건축신문, vol. 21, 2018, 도서출판 마티 넥스토피아, 건축신문, vol. 21, 2018, 도서출판 마티 심소미, 「서브토피아가 점령한 세계에서」 p. 27 누군가는 서브토피아(subtopia)에 합류하기 위해 꿈꾸고, 누군가는 서브토피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본격화된 인구 분산 정책으로, 영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한 건축 평론가에 의해 일찍이 거론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1950년대 중반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전원도시 건설로부터 무분별한 확장을 감지한 이는 건축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네언(Ian Na..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사뮈엘 베케트, 김예령 역, 2001, 워크룸 프레스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사뮈엘 베케트, 김예령 역, 2001, 워크룸 프레스 p. 20 이상이 사람들이 애호가에게 늘어놓는 말들의 아주 작은 이룹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결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회화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림들이 있을 뿐이지요. 그림들이란 소시지가 아닌 이상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런 게 전부일겁니다. 즉, 그림들이랑 다소간의 상실을 통해, 또 이미지를 향하려는 다소간의 터무니없고 신비스로운 추동을 통해, 저희들이 많게든 적게든 모호한 내적 긴장들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준다는 것, 그 부합 정도를 몸소 판정하는 일은 당신 자신이 문제 삼을 바가 아닌데, 그 이유는 당신은 결코 그 긴장을 겪는 자의 입장이 아니기 ..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4: 공공미술, 윤난지 엮음, 2016, 눈빛출판사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4: 공공미술, 윤난지 엮음, 2016, 눈빛출판사 〈베트남 참전용사 추모물〉과 워싱턴 몰: 정치적 도상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 p. 248 건축물이 무언가를 기념화하거나 상징화할 필요는 없다. 혹은 건축물이 무엇인가를 상징화한다 해도, 기념화하는 방식은 아니며, '국가의' 역사와 연관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워싱턴 몰(Washington Mall) 내의 구조물들은 기억과 연관된 -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 빌렘 플루서, 윤종석 역, 2015, 엑스북스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 빌렘 플루서, 윤종석 역, 2015, 엑스북스 Die Schrift. Hat Schreiben Zukunft?, Vilém Flusser, 1987, Edition Flusser, Volume V 0. 서문 p. 17 ...소위 말하는 진보는 더 나아지는 것과 무조건 동의어는 아니다. 공룡도 당시에는 그 나름대로 멋진 동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라는 형식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현재 의문의 여지가 많다. 글쓰기에 있어서 특수한 것은 무엇인가? 과연 어떤 점에서 글쓰기가 그와 비교가능한 과거와 미래의 행위들 - 그림 그리기 행위, 즉 대리석 표면에 라틴어 자모음을 정으로 새겨넣는 것, 비단 위에 붓으로 중국인의 표의문자를 그리는 것, 칠판 위에 방정식의 기호들을 휘갈겨 쓰는..
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2021, 창비 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2021, 창비 우리의 사람들 p. 21 친구들은 죽으려고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친구들은 그곳에 간 친구들은 늘 조금씩 바뀌지만 누군가는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간 친구들은 늘 조금씩 바뀌지만 누군가는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대 없는 표정으로 그곳에 가 사진작가가 하는 말을 흥미롭게 듣다가 하지만 흘려듣다가 슈퍼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고 바람이 부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려고는 아니지만 그럴 것이다. 부산에 있는 나는 그게 나라고 확실히 알지만 얼굴은 나의 얼굴이 아니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거리이거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모차를 밀며 용두산공원을 걷는 그 ..
✨모순, 양귀자, 2017(1998), 도서출판 쓰다 ✨모순, 양귀자, 2017(1998), 도서출판 쓰다 1. 생의 외침 p. 11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이 넘은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입으로 그 사건을 설명한 적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p. 15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pp. 16-17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방미경 역, 2013, 민음사 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방미경 역, 2013, 민음사 Risibles Amours, Milan Kundara, 1968 누구도 웃지 않으리 p. 12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 p. 95 나는 계속 이 깃발 생각을 했다. 그가 여자를 쫓아다니는 일이, 해가 흐르면서 점점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추적 그 자체가 문제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쓸모없는 추적인 경우 매일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쫓아다닐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절대적인 추적을 추구할 수 있다...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사뮈엘 베케트, 임수현 역, 2016, 워크룸 프레스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사뮈엘 베케트, 임수현 역, 2016, 워크룸 프레스 Têtes-mortes, Le Dépeupleur, Pour finir encore et autres foirades, Samuel Beckett, 1967/1972,1970,1976 죽은-머리들 Têtes-mortes 충분히 Assez | 1966년 p. 12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이제 막 어린 시절에서 벗어난 때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완전히 벗어났다. 왼손이었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걸 못 견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앞으로 나아갔다. 장갑 한 쌍이면 충분했다. 자유로운 또는 바깥에 있는 손들은 맨살인 채 덜렁거렸다. 그는 자기 피부에..
오늘의 포르노그래피, 알랭 바디우, 강현주 역, 김상운 감수, 2015, 북노마드 오늘의 포르노그래피, 알랭 바디우, 강현주 역, 김상운 감수, 2015, 북노마드 Poronographie du temps prèsent, Alain Badiou, 2013 현재의 이미지 pp. 15-18 자크 라캉은 주네의 희곡을 길게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자기 이론의 대부분을 소포클레스의 희곡에서 끌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라캉은 실재계le réel를 재현[표상]으로, 욕망을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연극이 이를 위한 중요한 보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체들을 그들 자신의 창조적 능력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권력에 주체들이 동의하라고 상상적 수법에 의해 강요하는 것이 연극이라면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라캉은 형식적 외양을 강조합니다. 라캉은 「발코니」가 한 ..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이충훈 역, 2015, 문학동네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이충훈 역, 2015, 문학동네 Penser/Classer, Georges Perec, 1985 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Notes sur ce que je cherche, Le Figaro, 1978, 12.8, p. 28 p. 13 나는 막연하나마 내가 쓴 책들이 문학에 대해 내가 품고 있는 총체적 이미지에 그 의미들을 새기고, 또 그 안에서 의미를 띤다고 느끼지만, 이 이미지를 결코 정확히 포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이미지는 내게 글쓰기 너머의 것이며,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물음에 대한 것으로, 이는 내가 오직 글을 쓰면서만, 기어코 완성되고야 마는 하나의 퍼즐처럼 계속해서 써나가면서, 이 이미지가 가시화되어갈 바로 그 순간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면서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