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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이충훈 역, 2015, 문학동네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이충훈 역, 2015, 문학동네

Penser/Classer, Georges Perec, 1985

 

 

 

 

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Notes sur ce que je cherche, Le Figaro, 1978, 12.8, p. 28

p. 13

나는 막연하나마 내가 쓴 책들이 문학에 대해 내가 품고 있는 총체적 이미지에 그 의미들을 새기고, 또 그 안에서 의미를 띤다고 느끼지만, 이 이미지를 결코 정확히 포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이미지는 내게 글쓰기 너머의 것이며,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물음에 대한 것으로, 이는 내가 오직 글을 쓰면서만, 기어코 완성되고야 마는 하나의 퍼즐처럼 계속해서 써나가면서, 이 이미지가 가시화되어갈 바로 그 순간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면서만,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을 정리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간략 노트, Notes brèves sur l'art et la manière de ranger ses livres, L'Humidité, numéro 25, 1978 printemps, pp. 35-38

p. 37

2.5. 다른 모든 책의 열쇠가 될 책을 찾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사서들처럼, 우리는 완성된 것에 대한 환상과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 생기는 현기증 사이를 부단히 오간다. 완성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단번에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파악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해, 질서와 무질서가 우연성을 가리키는 두 개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 두 가지는 책과 체계의 마멸을 은폐하는 데 쓰이는 미끼요, 눈속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장서가 이 둘 사이에서 때때로 잊지 않기 위해 표시해둔 곳으로서, 고양이의 쉼터로, 잡동사니 창고로 쓰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일이다. 

 

 

열두 개의 삐딱한 시선, Douze regards obliques, Traverses, numéro 3, 1976, pp. 44-48

p. 44

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유행이라면 변덕, 본능, 공상, 발명, 경박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유행은 전적으로 폭력의 편에 있다. 모델을 따르고 그에 집착하는 폭력, 사회적 함의에서 나오는 폭력이면서 그뒤에 경멸을 숨기고 있는 폭력인 것이다. 

 

pp. 47-48

10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행은 불안정한 것, 손에 쥘 수 없는 것, 망각을 부각시킨다. 하찮은 경험은 하찮은 기호, 고색을 칠하고 인조가죽을 입힌 기교,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모조품으로 귀결된다. 진짜라 해도 그 자체로 하찮은 것이라면 그것의 하찮음은 기만 속에서 공인받아온 그 뼈대만 남을 때까지 졸아들고 만다. 새롭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진부함을 감출 수 없는 단순한 곡조나 모조 보석의 그럴싸한 이미테이션 등이 그렇다. 그것은 작위적인 묵인이자, 부재하는 대화다. 최신형......이라는 실체 없는 코드의 빈곤함이나 공유될 뿐이다.

        유행의 반대, 이것이 분명 유행에 뒤처진 것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유행이란 형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 있는 것, 닻을 내리고 끈질기게 버티며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것, 즉 대상과 그것의 기억, 존재와 그 역사인 것이다. 

 

 

읽기: 사회-생리학적 개요, Lire: esquisse socio-physiologique, Esprit, numéro 453, 1976. 1, pp. 9-20

[각주:1]

 

 

'생각하기/분류하기', Penser/Classer Esprit, numéro 453, 1976. 1, pp. 9-20

p. 129

N) 질문들

생각하기/분류하기

 

     이 둘을 가르는 빗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게 묻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내가 분류하기 전에 생각하는지 묻는 것인가, 생각하기 전에 분류하는지 묻는 것인가? 분류하려 할 때 나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가?

 

pp. 130-131

R) 유토피아

     유토피아치고 따분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우연, 차이, '다양성'에 마련된 자리가 그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며, 질서의 통제를 받는다. 

     어떤 유토피아든 그 이면에는 항상 엄청난 분류의 의도가 숨어있다.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고 각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조르주 페렉이 1982년 죽고 난 이후 묶어 편집한 첫 산문집. 

 

 

*세이 쇼나곤, 마쿠라노소시

 

 

 

 

 

  1. 이 부분은 일부를 발췌하기 어려웠다. I. 육체 | 눈, 목소리, 입술, 손, 자세.  II. 주변으로 이어지는 단상들은 오늘날에 전자책과 연결지어 읽어보면 재밋는 글이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