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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토피아, 건축신문, vol. 21, 2018, 도서출판 마티

넥스토피아, 건축신문, vol. 21, 2018, 도서출판 마티

 

 

 

 

심소미, 「서브토피아가 점령한 세계에서」

 

p. 27
누군가는 서브토피아(subtopia)에 합류하기 위해 꿈꾸고, 누군가는 서브토피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본격화된 인구 분산 정책으로, 영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한 건축 평론가에 의해 일찍이 거론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1950년대 중반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전원도시 건설로부터 무분별한 확장을 감지한 이는 건축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네언(Ian Nairn)이다. 그는 교외에서의 도시 재건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 시대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염료한 것은 전쟁의 폫어 이후 고의로 방치된 교외 지역이다. 밀집된 도시와 텅 빈 시골, 그 사이를 조율하고자 시도된 새로운 전원도시에서 서브토피아의 세계를 본 것이다.

 

배윤경, 「지방 도시의 지속 불가능성」

 
p. 39
지방 도시에 대해 생각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시소의 반대편에는 이러한 개인적 체험이 비교 대상으로 놓여있다. 

p. 43
이질적으로 들어선 아파트는 렘 콜하스가 1972년에 발표한 「대탈출, 혹은 건축의 자발적인 수감자들」[각주:1]을 닮았다. 대도시 런던의 혼잡과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장벽 너머로 기꺼이 도피한다는 영화적 시나리오는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 상황마다 안티테제로 호출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경우 도시적 삶이 아닌 농촌의 풍경을 혼돈으로 규정하고 같은 종교를 가진 자신들만의 비지(enclave)를 구축하여 틀어박힌 처지가 그러하다. 

p. 47
그렇다면 기왕 사라지는 마당에 마지막을 기념하는 것은 또 어떨까? 대단지 아파트 프루이트 아이고의 폭파 장면이 모더니즘의 종언을 고하는 순간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듯 말이다. 라스베이거스 스타더스트 호텔의 폭파는 일종의 축제이자 화려한 은퇴식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미 기능을 상실한 건물을 자르거나 해체했던 고든 마타-클락과 같은 아티스트를 따라 해도 좋겠다. 


남수현, 「넥스토피아적 공공영역을 향하여 ― 우주에서 지상으로」

 p. 59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해진 공간이 없는 공공영역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애드호크라시(adhocracy)’라고 긍정적으로 칭했다. 하지만 초기의 희망적인 예상과는 달리 편향된 정보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유사독재 방식의 정치가 출현하는 현실이 이 현상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리적 차원이 결여된 담론이나 상호작용은 현실이 결여된 경험이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오렌지카운티 같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단지에서 사기 범죄가 더 성행한다는 통계를 보면, 인공적이고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에 익숙한 우리는 인터넷 시대 전부터 이미 가상적인 현실을 사는 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요새를 만들고 나면, 그 바깥은 삶과 더 거리가 멀어진 야생의 지대가 된다. 

 

 

 


 

 

 

 

 

 

  1. O.M.A, Rem Koolhaas, Bruce Mau, “Exodus, or the Voluntary Prisoners of Architecture,” S.M.L.XL, 2-21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