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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사뮈엘 베케트, 임수현 역, 2016, 워크룸 프레스

죽은-머리들/소멸자/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사뮈엘 베케트, 임수현 역, 2016, 워크룸 프레스

Têtes-mortes, Le Dépeupleur, Pour finir encore et autres foirades, Samuel Beckett, 1967/1972,1970,1976 

 

 

 

 

죽은-머리들 Têtes-mortes
충분히 Assez | 1966년

p. 12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이제 막 어린 시절에서 벗어난 때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완전히 벗어났다. 왼손이었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걸 못 견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앞으로 나아갔다. 장갑 한 쌍이면 충분했다. 자유로운 또는 바깥에 있는 손들은 맨살인 채 덜렁거렸다. 그는 자기 피부에 낯선 피부가 닿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다. 점막은 상관없었다. 그래도 그가 장갑을 벗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맨살의 손을 부딪치며 100미터 정도를 지나쳐 오곤 했다. 그 이상을 걷는 일은 드물었다. 그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만일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손들이 서로 짝이 맞지 않으면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내 손은 그의 손 안에서 자리를 잡아본 적이 없다. 가끔 서로 손을 놓기도 한다. 속박이 풀어지면 손들은 각자의 쪽으로 떨어졌다. 손들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대체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손이 나의 손을 다시 잡기까지는.

 

p. 16

이 모든 개념들은 그가 알려준 것이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내 식으로 조합했을 뿐이다. 이런 식의 삶이 네다섯 번 주어졌더라면 나는 어떤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었을 텐데.[각주:1]

 

pp. 16-17

나는 내 불행을 어느 산꼭대기 근처에 놓아두었다. 아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고요한 평지 위였다. 몸을 돌렸다면 나는 내가 버려두고 온 바로 그곳에서 그를 보았을 것이다. 그 어떤 하찮은 것이라도 나의 착각을 만일 착각이 있었다면 알게 해줬을 것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그를 다시 만나리라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버려두고 온 바로 그곳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또는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도. 그가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꽃들로부터 거의 눈을 들어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목소리도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듯 나는 그가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결과 나는 머지않아 그런 기대를 더 이상 전혀 하지 않게 했다.

 

 

죽은 상상력 상상해보라 Imagination motre imaginez | 1965년

공간성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하는.

 

 

쿵 Bing | 1966년

텍스트 중간중간 에 들어가는 '쿵'들

p. 26

....쿵 침묵 앗 완성된.

 

 

없는 Sans | 1969년

p. 27

폐허들 진정한 도피처 멀리서부터 수많은 거짓들을 거치며 마침내 그쪽으로 향하게 된. 아득히 먼 곳들 뒤섞인 땅 하늘 소리 하나 없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회색 평면 푸르고 창백한 둘 작은 몸 뛰는 심장 홀로 서 있는. 불 꺼진 열린 네 개의 벽이 뒤로 넘어간 출구 없는 진정한 도피처.

 

 

 

 

소멸자 Le Dépeupleur | 1968~70

p. 39

예로부터 언제나 출구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거나 더 나아가 그런 생각이 널리 퍼졌다. 소문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자들도 다시 소문을 믿게 될 수가 있는데 이는 출구가 지속되는 한 이곳의 모든 것이 죽어가긴 하지만 그건 너무나 점진적이고 또 말하자면 너무나 유동적인 죽음이어서 방문자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출구의 성격과 그 위치에 대해서는 주된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이 오래된 믿음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리 상반되지는 않는다. 일군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터널들 중 하나의 내부에 생겨난 비밀 통로일 수밖에 없으며 시인이 말하듯 자연의 성역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천장 중앙에 숨겨진 뚜껑 문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굴뚝으로 이어져 그 끝까지 가면 아직 태양과 다른 별들이 빛나고 있을 거라 상상한다. 두 의견들이 서로 입장을 바꾸는 경우도 빈번해서 한때 터널이라고 단언했던 자가 어느 순간 뚜껑문이라고 단언하기도 하고 다시 나중에 자기가 틀렸다고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기는 해도 이들 두 입장 중 첫 번째가 두 번째를 위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느리고 또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그리고 당연히 서로의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그걸 알아채려면 신들끼리만 아는 비밀 속에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추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터널에서부터 출발하면 어떤 출구에라도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믿는 사람들은 꼭 그런 생각을 빌려오지 않고서라도 출구를 발견하는 일에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뚜껑 문 지지자들은 천장 중앙이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런 헛된 생각에서 벗어나 있다. 이렇게 해서 출구는 서서히 터널로부터 천장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러다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된다. 이것이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그래도 그 충실성으로 인해 그토록 많은 사로잡힌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이 믿음에 대한 첫 번째 요약이다. 이 불필요한 작은 빛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어둠이라고 가정한다면 분명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다른 실패작들 Autres foirades | 1960년대
II

pp. 69-70

나는 태어나기 전에 단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것은 태어나야만 했으며, 그건 그였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다, 울음소리를 낸 건 그였고, 세상을 본 건 그였고, 난 울지 않았으며, 세상을 보지도 않았다, 내가 목소리를 가진다는 건 불가능하고, 내가 생각을 가진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리고 난 말을 하고 생각을 하니, 내가 불가능을 행하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살았던 건 그였고, 난 살지 않았고, 그는, 나 때문에, 잘못 살았고, 그는, 나 때문에, 자살을 할 것이고, 난 그 얘기를 하려 하고, 그의 죽음을, 그의 삶의 마지막과 그의 죽음을, 조금씩, 현재형으로 얘기하려 하고, 그의 죽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고, .......

 

 

 

해설 | "죽은-머리"의 상상력, 끝나지 않는 글쓰기, 임수현
4. 중얼거림, 어쩌면 어떤 의미

p. 86

베게트의 문학은 후반기로 갈수록 밖에서 안으로, 의미에서 소리로, 탐색에서 관찰로, 이야기에서 서술 행위로 방향을 잡아간다. 몸의 움직임 또한 전체에서 상반신으로, 상반신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입과 눈으로 점차 축소되고, 모든 표현의 가능성들에 대한 완전한 소멸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디우가 "뺄셈의 방식"이라고 명명한 이러한 진행은, 존재의 부정이나 무화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최소한의 최소" 속에서 존재의 출현이 극대화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각주:2]

 

6. 다시 끝내기, 더 잘 실패하기

p. 93

베케트에 따르면, "예술가란 다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할 만큼 실패하는 존재"[각주:3]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패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작가도 보여주지 못했던 존재의 심연을, 그리고 그것을 힘겹게 담아내는 언어의 맨몸과 "죽은-머리"의 상상력을 목격하게 된다. 

 

7. 어떤 용기, 또는 지는 싸움

pp. 93-94

...베케트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리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전공자를 민망하게 만든 그 용기는 어쩌면 그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번역자가 되어, 한동안 덮어두었던 베케트의 책들을 다시 꺼낸다. 그리고 당혹스러움. 그가 알았던, 안다고 자부하던 베케트의 텍스트가, 이렇게 낯선 것이었던가. 베케트가 자신의 작품들을 영어로도 다시 쓴 건 번역자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 사이에서,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가장 근사치의 말과 의미를 찾는다. 베케트의 번역은, 때론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 된다. "지는 싸움"이 될 줄은 애초에 각오했지만, 그건 작가의 창작에 속한 영역이고, 번역이라면 가능한 한 덜 실패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이토록 아름다운 책이라면, 

 

 

 

 

 

 

 

  1. 베게트가 직접 번역한 영어 판본에서는 이 단락이 삭제되었다. 사뮈엘 베케트, 산문 전집 1929~89(The Complet Short Prose, 1929-1989)』, NY: Grove Press, 1995, p. 190. [본문으로]
  2. "베케트의 방법론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그는 주체를 빼거나 유예시킨 다음, 그 상태에서 존재에게 무엇이 도래하는지 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말하기가 배제된 보기의 가설, 보기가 배제된 말하기의 가설, 말의 소멸이라는 가설 등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그 순간 더 잘 보이는 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바디우,

    베케트에 대하여, 서용순・임수현 역, 민음사, 2013, pp. 233-234. [본문으로]

  3. 베케트, 『세 편의 대화, p. 2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