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피에르 레비, 권수경 역, 2002, 문학과지성사
L'intelligence collective, 1994, Pierre Lévy
p.20
새로운 유목공간은 지리적 영토도 제도나 국가의 영토도 아니다. 그것은 인식・지식・사유의 힘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서, 그 안에서 존재론적 자질 및 사교 방식들이 개화하고 이동한다.
p.38
집단 지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을 말한다. 이러한 정의에 다음 사항을 덧붙이자. 집단 지성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함꼐 풍요로워지는 것이지 물신화되거나 신격화된 공동체 숭배가 아니다.
pp.39-40
지성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것은 통신 설비의 개입을 부르는데, 이 설비는 일정한 양적 단계를 넘어서면 디지털 정보 기술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통신 체계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식의 짬재 세계 속에서 그들의 상호 작용을 조정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평범한 물리적 세계를 모델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을 벗어난 집단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움직이는 의미작용의 풍경 속에서 상호 작용 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건, 결정, 행위, 그리고 인간은 공유되는 맥락contexte이라고 하는 역동적인 지도에 위치하며, 그들은 스스로가 거기서 의미를 찾는 잠재적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시킬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탈영토화된 지적 공동체의 구성원과 지식 사이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유동적 공간이 될 것이다.
pp.50-51
환대는 사회적 유대, 특히 상호성의 형태로 정립된 사회적 유대의 존속을 훌륭히 표상한다. 프랑스어의 ‘hôte’, 영어의 ‘host’는 접대하는 사람과 접대받는 사람을 구별없이 지칭한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환대는 여행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한다. 환대를 통해, 떨어져 사는 다르고 낯선 사람이 어떤 공동체 안에 받아들여지고 동화되고 포함된다. 환대는 개인을 집단에 연결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추방에 정확히 반대된다…..사실 가장 포용력 많은 사람이 가장 배척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방인들을 동화시키면서 자기 자신은 쫓겨나고, 다른 사람들을 통과시키면서 자기도 국경을 넘는 의인은 탁월한 국경 안내인이다.
p.51
하나의 도시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과 맺는 관계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상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도시는 스스로에 대한 관계와, 모두에 의해 모두를 통합하는 작업에 의해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10명부터 진정한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10명에서 비로소 익명성이 시작된다.
pp.89-90
집단적 발화 주체의 형성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문장들을 발화한다면(또는 그렇게 여겨진다면), 집단적 발화 체제는 단선율 또는 제창의 단계에 머무를 것이다. 빈약한 ‘우리’는 단조로운 문장들을 발화한다. 그러나 ‘우리’라고 말하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어떤 형태의 조직들은 개인이 차별화된 방식으로 복합적인 최종 발화énoncé 속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 여러 저자가 공동으로 쓴 책이나 기사, 각자의 몫을 언급하는 영화의 타이틀, 연극, 신문 등이 그 예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거기에 대응되는 것은 의회에 의해 토의・변경・수정・채택된 법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발화는 완성된 최종 산물을 읽는 것일 뿐, 목소리의 구성과 메시지를 둘러싼 협상이 내포하는 열린 역학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다른 한편 이러한 유형의 발화 체제는 일반적으로 어떤 저자, 연출자, 편집장, ‘지휘자’에 의해 주도된다. 여기에서 발화 장치는 이미 다성의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향악은 충분히 생동감 있고 다원적이며 불확정적인 것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생성점에서부터 미리 예정된 조화 내지는 개발 과정의 어느 정지점에 의해 고정된 조화, 아니면 과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초월점’에 의해 위로부터 주도된 조화일 뿐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언어가 되기 위해, 집단의 언어는 스스로의 호흡을 따르고, 끊임없이 샘솟고, 실시간으로 고안되어야 한다.
p.91
활동 지도cinécarte
p.124
지식의 중요성과 실제는 더 이상 그 지식의 원천이 얼마나 상위에 속하는가에 따라서 평가되지 않고, 그것의 명철함에 따라, 그리고 속세에 사는 개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p.135
…고전적인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흔적들의 정적이고 불연속적인 체계이다. 그것은 무기력하고, 부서지고, 흩어지고, 언제나 더 크게만 느껴지는 몸체라서 그것을 재통합하고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오랫동안 탐구하고 해석하고, 또 연결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집단 지성의 가상 세계들은 새로운 글쓰기를 개발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픽토그램이나 영상 언어cinélangage가 그것인데, 이들은 가상 공간 항해자들의 쌍방향 대화의 흔적을 간직할 것이다.
p.135
해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의 무기력한 육체로 하여금 다시 춤추게 만드는 미묘한 정신이다. 그것은 또한 죽은 기호 앞에 작가의 숨결을 불러낸다. 텍스트를 낳은 감정과 이미지의 매듭을 우연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텍스트, 즉 해석자의 텍스트를 생산한다.
pp. 136-137
확실히 이미지는 인식을 위해 오로지 봉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홀리고 유혹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감각은 막연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어떤 투쟁의 쟁점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각은 지식의 도구 혹은 지성의 활동 영역인가, 아니면 정신의 블랙홀인가? 우리가 관념에서 감각의 측면으로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이미지-기호의 영역은 더욱 확장됨과 동시에 더욱 복잡해지고, 우리는 인간을 신에게 더욱 근접시키게 될 것이다.
p. 137
가상 세계는 서로 얽힌 관계들을 감지하고, 가장 모호한 명제들까지도 명확히 하며, 이미지들을 통해 계시하고 이해를 돕는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지성, 나아가 집단적 상상력을 직조해줄 이미지 언어들이 개화하고 발달하는 환경이다.
p. 140
지식 집단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자신이다...
지식 집단은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 자신의 동인이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의지로부터 태어나는 것이지, 외부의 충동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p. 144
우리가 다시 유목민이 되려는 시점에, 그리고 이주기를 위한 건축을 발명해야 할 때, 피라미드를 세운 것이다. 사유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오늘부터 당장 사이버 공간의 소프트웨어 대로를 달리며 감지할 수 없는 디지털 주택에 거주하는데, 도처에 퍼져 있는 이 디지털 주택들이 이제부터는 개인과 집단의 주관성을 형성한다. 사이버 공간은 유목적 도시 계획이고, 소프트웨어의 축성학이며, 지식의 공간의 유동적인 토목공학이다. 그 속에는 지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일하고 놀고 함께하는 제반 양식들이 있다. 사이버 공간은 일종의 실내 건축이고, 지성의 집단적 설비를 관리하는 미완의 체계이며, 기호들로 된 지붕을 가진 회전 도시이다. 그러므로 인간 집단의 의사 소통과 사유의 장소인 사이버 공간을 개발하는 것은 다가올 세기의 미학적 정치적 주요 쟁점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pp. 148-149
창작 행위의 외부에 위치한 수신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면 수신자들이 나중에서야 그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존의 예술 형태 대신에 예술가는 이제 의사 소통과 생산의 환경 및 배열을 만드는 동시에, 수신자들을 연루시키는 한편, 해석자들을 주체로 변화시키며, 해석을 진단 행위에 연결하는 집단적 이벤트를 조직하려 시도한다. 이른바 '열린 작품'은 이러한 방향을 이미 예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해석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다.....연루 예술은 일로 부터 진행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다. 작업들은 어떤 순간, 장소 또는 집단의 역동성에 관계될 뿐 더 이상 사람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작가의 서명이 존재하지 않는 예술이다.
p. 149
...예술가는 어떻겠는가. 그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표현 양식들을 변화시킨다. 사실 공동체의 언어와 기호들을 계속적으로 발명하는 데 참여하는 것은 예술의 주된 사회적 기능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어를 창조하는 주체는 언제나 집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pp. 150-151
상상하는 집단 고유의 시간은 '쌍방형 대화interactivité'의 분절되고 가속화되고 점괄적인 시간의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즉각적인 것이나 기억 없는 채널 돌리기에서 나타나는 미흡함 또한 우리를 해석의 기나긴 연쇄에 연결시켜주지 못한다. 혹은 죽은 사람들의 시대를 산 사람들의 것과 같은 지속 안에 포함시키면서, 현재의 살아있는 물로 시간에 맞서는 벽을 건설하는 한없이 질긴 전통에 연결시켜주지 못한다. 즉 녹석이 산호초를 만들듯, 주석들은 층층히 쌓이면서 각각 또 다른 주석의 대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니다. 상상하는 집단의 리듬은 아주 느림 춤과 흡사하다. 그것은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는 안무와도 같다. 다시 말해 동작들이 서서히 일치하고, 끝없이 신중하게 화답하는 안무, 무용수들이 동시에 움직이거나 한순간 늦게 움직인느 비밀스러운 템포를 차츰차츰 발견하게 되는 안무와도 같다. 각자는 조용하고 느리고 복잡한 동시성synchronie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운다. 지식 집단의 시간은 다시 형성되는 큰 강의 삼각주처럼 조용히 펼쳐지고 엉켰다 굳어진다. 상상하는 집단은 그것의 창립식을 발명할 시간을 갖는 데서 생겨난다. 따라서 그것은 기원을 기리는 것인 동시에 아직 미정 상태인 기원 그 자체이다.
pp. 153-154
탈영토화의 건축을 위하여
여기서 우리는 기반 없는 건축을 옹호한다. 마치 모든 실용 해양학 향해 방위 체계를 활용한 조선술 같은 건축 말이다. 그것은 이간의 육체나 정신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유사하거나 정적인 세계의 반영으로서의 얌전한 '상징적' 건물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엑소더스의 건축은 팽창 중인 기호의 세계들 가운데 유목적 우주를 성장시킨다. 그것은 육체의 끊임없는 변신을 도모한다. 육체와 시간이 결여된 이 건축은 전인미답 상태로 있는 기억의 열도들을 향해 배를 띄운다. 미래의 건축은 상연을 위한 극장을 세우기보다는 혼돈의 바다를 가로지르기 [위함이다.]
p. 168
지식의 공간은 위대한 하룻밤에 솟아나지 않는다.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수많은 아침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다.
p. 176
인간은 온몸으로 네 가지 공간을 통과한다. 그가 걸을 때, 두 발은 신화를 안고 있는 위대한 지구를 두드리고, 머리카락은 우주와 제신들을 향해 곤두선다. 앉아 있거나 멈춰 있을 때 그는 영토에 등재된다. 그의 두 팔은 상품 공간에서 일하고, 눈과 귀는 스펙터클의 기호들을 탐욕스럽게 삼킨다. 마지막으로 머리는 지식의 공간에 있고, 그의 두뇌는 다른 두뇌들에 연결되어 지식 집달들의 가상 세계들을 분비하면서 떠돌고 향해하고 인위적인 다중구 위에 수많은 지구들을 재창조한다.
p. 183
지구에서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영토상 마이크로 폴리스이며, 상품 공간에서는 마이크로 오이코스, 즉 작은 집이다. 지식의 공간에서 인간은 한층 더 축소된다. 인간은 고작 하나의 두뇌일 뿐이다. 그의 몸조차도 인지체계가 되어버린다.
p. 192
기호가 가진 이러한 초월성은 부재 체제를 만들거나, 기껏해야 기호와 사물이 준재의 완전한 현존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끝없이 그것을 추구하는, 점멸하는 빈사의 세계를 건설할 뿐이다. 사실 사물은 부재하고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을 그것의 이름・개념・이미지・지각대상으로만, 따라서 언제가 기호로만 파악하기 떄문이다. 사물은 여기에서 중성적이고, 희미하고, 신경이 제거된 재현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은 도달 불가능한 '지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 그 자체는 초월적이다. 기호 그 자체의 경우,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디만 존재론적 위엄은 지니지 못한다.
p. 195
복제, 유포, 무한 변이의 공간에서 기호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이 지시하는 사물도, 그것을 말하는 존재도 소환하지 않는다. 스펙터클은 그런 것이다. 모든 현실은 기호 쪽으로 넘어갔다. 현상, 인간, 작품은 모두 기호이다. 또한 그들은 기호로서 취급되고, 복제되고, 유포된다. 기호는 부재하는 사물을 환기시키지 않을뿐더러, 이제 그 연속의 근원, 다시 말해 '원본'으로 이끌 수도 없아. 왜냐하면 상품 공간에서 기호는 기록, 복제, 유포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로 속에서만 기호로 기능한다. 부재가 풍요의 환경에서 승리한다.
p. 203
11. 공간과 시간의 형상들
의미의 보유고, 끄적여지고 기호가 뿌려진 페이지는 훗날 독서, 해석, 해설을 부른다. 문자는 담론을 지속시키고 영속화한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로 씌어진 것은 남는다. 남는다는 말은 라틴어의 'restare,' '정지하다'에서 왔고, '정지하다'는 'stare,' 즉 '서다, 꼼짝 않고 서 있다, 세워졌다'에서 온 것이다.
p. 237
14. 인식론
지구: 육체
영토: 책
상품 공간: 하이퍼텍스트
15. 공간들 간의 관계: 정치 철학을 향하여
p. 255
영원의 연속
감정의 분위기와 실존의 윤곽은 유보 상태로 기억에 남아,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고 모든 회귀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언제 현존한다.
p. 273
지식 집단은 공백을 넓히려고 애쓴다. 여기에서 공백이란 결핍이나 부재가 아니고, 도가적 공백, 개방, 겸허로서, 그것만이 수련과 사유가 가능하게 한다.
지구는 충만하다. 언제나 충만하다. 그것은 증여의 공간, 무상의 공간, 끝없는 풍부의 공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의미의 공간이다. 영토와 상품 공간은 결핍에 의해 움직인다. 부재, 거세, 지연이 영토를 만든다.
*미셸 세르Micheal Serres 기하학의 기원les origines de la geometire 1993
*역량의 원어 찾아볼 것
**소돔과 고모라의 일화에서 의인의 수를 10명으로 줄인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집단의 최소 단위가 10명이 아닐까 추론한다.
*피에르 레비, 역동적 표의문자, 인위적 상상력을 향하어L'idéographie dynamique, vers une imagination artificielle, 1991. 이 책에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쌍방향 대화형 영상 언어cinélangage의 기술적 인지적 언어학적 가능성의 조건들이 묘사되어 있다.
*미셸 오티에와 피에르 레비 "우주백과전서, 초시각적 이상향La cosmopédie, une utopie hypervisu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