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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떼리블, 장 콕토, 심새중 역, 2016, 창비

앙팡 떼리블, 장 콕토, 심새중 역, 2016, 창비

Enfants Terribles, 1929, Jean Cocteau

 

 

 

 

p.14

그는 다르즐로를 찾고 있었다. 그는 다르즐로를 좋아했다.

사랑이 뭔지 알기도 전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 애정은 아이를 더한층 번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치료 수단이 전혀 없는, 모호하고도 강력한 병이었고, 성별도 목적도 없는 순결한 욕망이었다.

 

p. 46

요컨대 다르즐로가 보물 창고 속의 사진과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모델과 사진은 일체가 되었다. 모델은 불필요졌다. 다르즐로라는 아름다운 동물이 하나의 추상적인 형태로 이상화되면서 마법 지대의 세목들에 추가되었고, 뽈은 현실에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는 방학이나 다름없는 병을 마음껏 즐겼다. 

 

p. 50

야생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습관적으로 슬퍼하기는 해도 죽어서 부재하는 사람이 설 자리를 이내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람들은 예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이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자식들의 동물적인 뻔뻔스러움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방에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필요했다. 죽음이라는 믿기지 않는 사건이 마치 석관처럼 죽은 여인을 보호해주었고, 아이들이 괴상망측한 세부 사항 때문에 중대한 사건을 계속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믿기지 않는 사건은 뜻밖에도 꿈속 하늘의 가장 높은 자리를 죽은 여인에게 배정해주었다. 

 

p. 81

그들은 안락한 삶, 경박한 행실에 대한 편견에 반기를 드는 삶을 살았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노동으로 허비되는 가볍고 유연한 삶의 유연한 삶의 놀라운 힘"을 자기도 모르게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p. 111

그 방은 식당이나 계단을 깜박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어느 건축가의 아주 엉뚱한 계산 착오의 결과물 같았다. 

미까엘은 그 집을 개축한 적이 있었지만, 언제나 다다르게 되는 막다른 골목 같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까엘 같은 사람의 집에서 계산 착오는 곧 생명의 출현이었고, 기계장치가 인간화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이었다. 생기라곤 거의 없는 그 집에서 그 사점은 생명이 기어코 망명해 있는 장소였다. 

 

 

 


 

*쥴앤짐이 생각났다. 

**장라신 Jean Rachine 의 "아딸리" 17세기 프랑스의 고전 비극 작가. 

 

*1929년의 소설임을 잊지 말자. 

**Jean Cocteau "Le sang d'un poète"(1930)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