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소성의 시대_장소상실과 환대의 권리, 김현경, 건축신문, 정림건축문화재단, 2015.7.
- ...우리에겐 점점 인격적 대면이 봉쇄되고 있고"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반복적으로 들리지만 매번 자본주의가 내는 번쩍이는 소음에 묻힌다. 환대의 공간은 돈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곳이자, 다른 이야기를 기꺼이 경청하는 공간이다.
-...자본주의적 공간재편 과정의 일부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우리는 그 폭력성을 '장소성의 파괴'와 '장소의 박탈'이라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장소상실'로 규정할 수 있다.
'장소상실(placelessness. '무장소성'으로도 번역된다)은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의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1984) 이래 널리 사용되는 단어인데, 어떤 장소가 탈맥락화되어 고유 분위기를 잃는 것을 말한다. 주변 경관과 단절된 채 웅장하고 이국적인(정확히 말하면 국적불명의) 외양을 자랑하는 대규모 리조트파크는 장소상실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아렌트가 "세상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장소를 박탈"하여 사실상 가축과 비슷한 지위로 떨어진 난민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의미에서 말이다(철거민이나 노숙자는 자기 나라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이다).
-...건물을 재산으로만 인식하는 소유주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그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그는 거기서 살지 않고, 일하지도 않으니까.
-소유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사람과 물건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환대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자본의 논리 앞에서 '환대의 공간'들이 사라져갈 때 소유권은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마지막 발판을 잃고 마는 것이다.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김현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사이며, 최근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