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유니버스: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 윤율리・구정연 편, 2015, 미디어버스
안녕한 듯, 안녕하지 않은, 안녕한 것 같은, 안녕들하십니까? ⎯ 남웅
4.
pp. 35-36
물론 과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다양한 결을 갖고 있다. 먼저 여기 소비되는 과거의 시간성이 '실체'를 갖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지향하는 고전과 복고가 역사의 흔적을 원상태로 복원/복각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이미지, 카탈로그화 된 상태로 편집하고 화보로 스타일링된 이미지를 향유하는 것이라면, 지금 여기에 소비되는 과거는 실재했던 것이기보다 유령적 시간성을 가진 채 반복적으로 귀환하는 것에 가깝다.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이 2014 에르메스상 후보로 오른 슬기와 민 <테크니컬 드로잉>(2014)일 것이다. 작업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얼룩처럼 흐릿하게 확대되어 있다. 초접사된 이미지는 시각과 대상 사이에 거리가 소거된 공간에서 실체조차 확인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인프라 플랫infra-falt'으로 명명하는 이들의 압축된 평면이 역설적이게도 '역전된 깊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밝은 조명 아래 균일한 사이즈의 작업들은 극도로 표본화된 화이트 큐브의 공간을 재현하는데, 이는 프레임 속에서 암시되는 역설적인 깊이감과 긴장을 이룬다. 수퍼플랫의 시간성이 종언을 맞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수퍼플랫의 시간성은 모순을 품은 채 이중화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확해 보인다.
미술 출판의 변화 ⎯ 임경용
31.
pp. 132-133
각자 영역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언어를 완성 (혹은 좀 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이미지에 접근)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심보선과 김홍중은 우정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거리를 두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 서로에게 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관계로 변화"하는 것(김홍중), "평등하게 서로 나란히 있고"(심보선), "그러한 순간이 영원한 이미지로 남는 것"(김홍중), "서로를 지배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예측불가능성을, 심지어 신뢰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심보선)는 이들의 우정은 지금 디자이너와 미술가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힙스터 원더랜드의 ID; Peace B ⎯ 윤율리
35.
pp. 146-147
카프카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찢어발기는 방식을 역산하면 결국 신화란 "우리가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게임"이다. 2
대안-공간인가? ⎯ 바이홍
39.
p. 162
새로운 움직임들 중 대안이라는 말을 붙이는 공간은 없다. 그러나 대안이라는 단어 없이도 그 의미가 투영되는 지금, 그들이 여기서 벌이는 활동은 대안적이다. 대안이라는 말은 무언가로부터의 다름이 아니라 일반인식으로부터의 선점을 의미한다 '현재'의 활동들에는 이런 말들이 헐겁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과거의 대안공간 역시 그런 현실적이지 못한 헌신으로부터 제도화라는 보전을 택하지 않았던가.
기계신은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 ⎯ 윤율리
50.
pp. 201-202
신성한 것은 오직 환상뿐이라는 (그래서 신성함의 극치는 환상의 극치라는) 포이어바흐의 예지 너머에서 바디우가 20세기를 성칠하는 방식은 아주 유용한 하나의 관점을 열어준다. '박테리아 시대'의 디즈니랜드가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이라면, 오늘날 MTV는 '언젠가 사실이라 불리우는 것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거대한 유적지가 되었다. 미디어의 공간은 뮌헨과 체르노빌의 외상을 "현재에서 소화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가장의 연극무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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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능사
편집: 윤율리(책임편집), 구정연
필자: 강정석, 김영글, 남웅, 바이홍, 안대웅, 윤율리, 이슬비, 이승효, 임경용
디자인: 김영나, 도한결
*율리시스 캐리온 1975 「새로운 책 만들기의 예술」
*책 구성이 인상 깊었는데, 텍스트들이 위계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각 목차의, 각 필진의 텍스트들도 관통하는 넘버링이 되어 있었다. 책의 기본적인 요소인 페이지 수와 별개로 카운팅 되는 텍스트들.
표지를 펼치면 드러나는 해시태그(#)들을 고려한다면, Facebook 이나 Instagram과 같이 scrolling을 기반으로 하는 SNS의 글들과 형태가 닮아 있기도 한다.
유니버스를 구축하려면 이 정도 구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디자인과 내용까지 마음에 드는 책이다. 절판된 것이 슬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