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폭력, 장 보드리야르/에드가 모랭, 배영달 역, 2003, 동문선
La violence du monde, Jean Baudrillard, Edgar Morin, 2003
세계적인 것의 폭력 | 장 보드리야르
p. 12
쌍둥이 빌딩은 정사각형의 토대 위에 세워진 높이 4백 미터의 6면체, 완벽하게 균형잡혀 있지만 막혀 있는 연통관, 더 이상 외부로 통해 있지 않고 인위적인 조절에 따르는 통돌로 된 기념비였다. 빌딩이 두개라는 사실은 본래의 모든 기준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빌딩이 하나밖에 없었다면, 독점은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직 기호의 중복만이 기호가 가리키는 것을 실제로 종결지을 수 있다.
p. 14
보부르센터처럼 이 기형적인 건축물들은 일반적으로 현대 테크놀로지의 극단적인 형태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모호한 매혹을 불러일으켰고, 매력과 험오가 뒤섞인 모순적인 감정을 유발했으며, 어디에선가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은 은밀한 욕망을 부추겼다.
pp. 18-19
대부분의 건축 작품들은 파괴되거나 희생될 만한 가치가 없다. 오직 명성이 높은 건축 작품들만이 파괴되거나 희생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높이 평가받는 자랑거리이기 때문이다.
pp. 20-21
사건은 원래 거기에 있다. 사건과 이미지는 동시에 그리고 복잡하게, 원래 거기에 있다. 이미지로서의 사건이 있고, 사건으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보통 우리의 미디어 세계에서 이미지는 사건을 대신한다. 이미지는 사건을 대신하고, 이미지의 소비로 사건은 고갈된다. 이러한 가시적인 대체는 정보의 전략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수단을 통해 정보의 부재를 추구하는 것이다. 마치 현재의 전쟁이 다른 수단을 통해 정치 부재를 추구하듯이 말이다.
p. 38
오늘날 어떤 전통적 폭력이건 그것이 의미를 지니는 한 시스템을 재생시킨다.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고, 어떤 이데올로기적 해결책도 지니지 않는 상징적 폭력만이 실제로 시스템을 위협한다. 그런데 테러리즘이 이데올로기적 또는 정치적인 어떤 해결책도 지니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테러리즘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특별한 환희의 대상이 된다. 말하자면 테러리즘은 상징적인 행동으로 옮기면서 우리가 현실 속에서나 현사태 속에서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환희의 대상이된다.
요컨대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계무역센터의 빌딩들과 함께 보호막은 결코 무너져 버렸고, 깨어진 거울의 파편들 속에서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우리의 이미지를 찾고 있다.
세계적 위기의 한가운데서 | 에드가 모랭
pp. 49-50
맨 먼저 나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간결하게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물론 이때 오해는 1990년 이후로 사용된 '세계화'라는 말이, 이러한 과정이 단지 20세기말에 시작된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세계화mondialisation-'세계화planétarisation'는 내가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용어이다-는 아메리카의 정복과 함께 시작된 과정의 최종 단계이자 세계의 도처에서 점점 더 긴밀하게 교류하는 세계 항공술의 발전이다.
pp. 64-65
이 점에 대해 하이데거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 모든 차원을 지닌다. "기원은 우리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모든 세계적인 과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가서는 안 되며 어떤 시작을 생각해야 하는 강제성 속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pp. 74-75
...우주는 파괴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엘리엇이 "우주는 속삭임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멸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여건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반응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생한 참여이자 사랑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저서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La Fin de l'histoire et le dernier homme,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