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아홉날: 윤지원, 2019, 시청각
9 Days in the Summer, 2019, audio visual pavillion
스톡 푸티지의 추억, 혹은 무제(Untitled)의 역사: 윤지원 론 / 곽영빈
I. 스톡 푸티지의 추억
pp. 7-8
주지하듯 '스톡 푸티지'란 대개 다른 목적을 위해 재사용할 수 있는 건물이나 도시,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경관이나 특수효과 동영상을 지칭한다. 하지만 우리의 맥락에서 보다 엄격히 말하면 그들은 구체성이 탈각된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은 '대도시', 'LA'나 '도쿄, '대자연'이나 '붕괴되는 마천루'에 대응하는 이미지일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누가, 언제, 어떤 각도에서,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가와 같은 '스펙', 즉 사양specification은 철저하게 생략되어 있거나 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그러한 구체성이 획득, 혹은 수복되었을 때의 상황을 일종의 유토피아적 상태로 가정한다는 낭만주의적 한계와 다시 만난다.....앞에서 우리가 의문시했던 '행복' 이미지 속 모녀에 대한 정보 역시, 사실은 <아침마당>과 같은 프로그램이 수십 년째 탐색해 소비해주는 것들일 뿐이다. 즉 '구체성' 자체는 해결책이 아니다.
II. 이미지의 폐허
pp. 9-10
윤지원이 다루는 이미지가 잠재적인 차원에서 스톡 푸티지라는 것은, 따라서 '우리 시대의 이미지가 상실한 구체성을 회복하자!'는 식의 노스탤지어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새롭다거나 고유하다고 여기는 많은 이미지들 자체가 스톡 푸티지였거나 고유하다고 여기는 많은 이미지들 자체가 스톡 푸티지였거나 앞으로 스톡푸티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면, '이미지의 폐허'로 언제건 풍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궤적으로서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서울시립미술관 의뢰로 만들어진 <무제(도시와 영상)>(2017)]....화면을 내내 메우는 건 하얀 벽일 뿐이며, 거기에 누적되어 있었던 역사와 기억의 층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망각된 역사의 자료들을 일일이 구해 화면에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윤지원의 과제가 '망각'의 단순한 반대말로 '기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이를 '기억'이라 여기는 것만큼 단순한 '환상'도 없다), 기억이 희미한 흔적으로서의 폐허, 또는 망각의 과정으로서의 역사를 시각화하려는 시도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무제(세계)>: 이름 없는 세계를 찾아서 / 서현석
p. 37
윤지원이 중국을 여행하면서 이르는 모든 곳에는 이미지가 넘쳐나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작가 자신의 여정조차 아이폰이 관리해주고 확인해준다. 오늘날의 '여행'은 온라인상의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로 축소되어 있다. 혁명도 예술적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여행자 특유의 고유한 경험이 과연 가능할까. 무수한 이미지들이 소비되고 버려지는 마당에 이미지와 이미지를 '병치'한들 '새로운 의미'가 발생할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앙드레 브르통이 파리의 거리에서 특정한 시점이 선사하는 특이한 병치에 매혹되었듯, 윤지원도 우연하고도 특이한 병치를 찾아 도시를 탐색한다. 하지만 21세기 도시 산책자가 발굴하는 '우연한 신비'는 거대한 소비의 장 속에 포획되어 있다. '특이함'이란 이미 아우라를 상실한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단상들의 무의미한 열거일 뿐이다. 21세기란, 그런 곳이다.
*신덕호 디자이너 정말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