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아즈마 히로키, 양지연 역, 2015, 도서출판 마티
Chernobyl Dark Tourism Guide, 2013, Hiroki Azuma
p. 10
한국어판 서문
자, '관광'이라도 좋으니 체르노빌에 한 번 가보자.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현실의 복잡미묘함을, 이미지가 가하는 폭력을 직접 대면해보자. 이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이다.
여행을 시작하며 / 아즈마 히로키
pp. 14-15
취재를 마치고 돌아보니 인터뷰를 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정부 측과 시민 측, 원전 추진과 원전 반대 등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모두 입을 모아 체르노빌 기억의 풍화를 걱정하며 관광객이든 유람객이든 영화 촬영을 위해서든 사람들이 체르노빌에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고 대답한 점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그런 담담한 태도는 사고가 일어난 지 몇년 지나지 않아 아직 기억도 상처도 강렬한 일본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습입니다만 언젠가 반드시 직면할 현실이기도 합니다.
1부. 관광
pp. 80-81
우크라이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원전사고, 전쟁, 기근 등 많은 비극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전시를 준비할 때에는 감정과 상징성을 중시합니다. 회의록과 같이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환기하는 배치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른바 시를 쓰듯이 전시를 합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지닌 무게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사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되지요.
p. 99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재해와 같은 인류의 아픈 족적을 더듬어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려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 새로운 관광 개념은 학문적으로는 199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초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지역이 많이 거론되었는데, 최근에는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등으로 연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다만 다크 투어리즘의 근원적 의의는 슬픔의 승계이 있으므로 학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현존하는 슬픔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다크 투어리스트를 지향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듬어 안으려 할 때 투어리즘은 매우 의미 있는 방법론이다. 한 공간에서 생긴 슬픔은 그곳에 가야만 무게와 참담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슬픔은 공유되고 지역 사람들 또한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지역의 슬픔은 투어리스트를 통해 외부에 전파된다. 이 결과로서 시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적인 슬픔의 존재가 인지되고, 지역은 서로 '구조적인 연결 고리'를 얻게되기도 한다.
2부. 취재
체르노빌에서 생각하다: 보도・기억・지진으로 인한 재해 유적 / 쓰다 다이스케, 저널리스트・미디어 활동가
p. 160
시간이 경과할수록 귀중한 자료는 흩어지고 체험을 생생히 증언해줄 사람도 줄어든다. 아카이브가 의미 있는 것이 될지 안 될지는 전적으로 비극이 일어나고나서 얼마나 빨리 '남길' 것을 정해 작업에 착수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인에게 묻다 / 정보 오염에 저항하기 위해 / 세르게이 미루누이, 작가, 체르노빌 관광 플래너
pp. 191-192
픽션을 통한 계몽
...이 책도 어떤 의미에서는 계몽을 위해서 쓰신 거군요?
좋은 질문입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정보 오염 때문에 여러 정보 매체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국가도 신용할 수 없었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일대일 신뢰만 남습니다. 시련을 같이 겪은 사람,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을 사람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책을 썻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친 '체르노빌 사람'이 시뮬라크르가 아니며 컴퓨터로 디자인된 이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 속 체르노빌 / 가이누마 히로시, 쓰다 다이스케, 아즈마 히로키
p. 232
아즈마 왜 증강현실로는 불충분하며 실제 현실이어야 하냐면 심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증강현실에서도 사고 당시의 상황은 정확히 재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보는 정보로서만 존재해서는 안 되며 '알고 싶다!', '만져보고 싶다!'라는 욕망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이는 실제 현실에 견줄 게 못되죠. 실제를 눈으로 직접 보면 정보뿐만 아니라 검정이 더해져 지금까지 분명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 바뀌고 관계가 바뀝니다. 그런 체험이 중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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