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 시그니처; 디자이너와 작가 독자 사용자를 위해, 마이클 록, 최성민 최슬기 역, 2019, 안그라픽스
Multiple Signatures: on designers, authors, readers and users, Michael Rock, Rick Poynor, Mark Wigley, Susan Sellers, 2013
대화, 수전 셀러스, 조지애나 스타우트, 마이클 록
p. 24
1990년 에세이 「그래픽 미술가의 역설Paradox on the Graphic Artist」에서 장 프랑수아 료타르는 "그들은 걱정이 끔찍이 많다"라는 말로 시작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이어가지
맞는 말이네.
디자이너는 작가인가, 마이클 록
p. 54(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혹시 작가분 계십니까
바르트가 「작가의 죽음을 1968년 파리에서 썼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학생들이 노동자와 연대해 총파업 바리케이트에 참여하고 서구에서 사회 혁명 가능성이 언급되던 바로 그해였다. 1968년에는 (작가로 표상되는) 권위를 전복하고 독자민중를 옹립하자는 주장에 실질적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으려면 우선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디자이너는 소유하는 적도 없는 권력을 전복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p. 58
작가 활동을 미화하거나 축성하기보다는, 현존하는 디자인과 향후 진화 방향을 기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대안 모델을 세 가지 제안해본다. 번역가로서 디자이너, 연기자 혹은 연주자로서 디자이너, 감독으로서 디자이너다.
디자인으로서 은유, 롭 지엄피에트로, 마이클 록
p. 69
(다른 이야기지만) 크리스 페르마스가 수업에서 불량한 발표를 두고 '공기 튀김'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집어치워, 마이클 록
p. 90
디자이너가 하는 일도 스토리텔링이다. 우리가 숙달해야하는 것은 내용 서사가 아니라 이야기 장치다. 타이포그래피, 선, 형태, 색, 대비, 크기, 무게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를 통해, 말 그대로 행간을 통해 이야기한다.
p. 97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는 인간관계에서 시작해 느슨한 분석과 날카로운 상상으로 변신하고, 사실상 자폐적인 시각물 생성 과정을 거쳐 상상과 실험을 종합하는 단계로 넘어가며, 이어 컴퓨터나 기계를 이용해(여러 외부인 도움을 받거나 받지 않고) 만들기만 하는 상태로 변신한 다움, 선전・홍보・유통・판매・광고・테스트・비평 등이 포함된 복잡한 사회화・문화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소개된다.
이념과 수다, 마이클 스피크스・마이클 록
p. 105
마이클 스피크스
IAUS의 논쟁이 ANY의 홍보로 이동한 움직임은, 엄밀하고 학구적이며 정치색 강한 1968년 이후 유럽 철학을 미국 학계에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반적 경향과 일치했다. 이런 '번역'은 본래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인 텍스트와 글쓰기를 만들어냈고, 그렇게 새로운 텍스트는 '이론'이라 불리게 되었다. 1980년 중반에만 해도 학술 서점에는 '이론' 코너가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인류학에서 수학과 건축에 이르는) 이론이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았다. 낡은 철학보다 쉽게 소비하고 복제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소비재였다. 나는 이런 상황이 무척 흥미로웠고 기꺼이 일자리 제의를 받아들였다.
통념, 엔리케 워커・마이클 록
p. 138
엔리케 워커
흥미롭게도 건축에서는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전력이 대개 클리셰가 된다. 기능보다 외관이 중요해지면 그럭헤 된다. 실제로 그게 바로 우리가 클리셰를 판별한 기준이었다. 우선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기록한 사례를 모아봤다. 벌써 백여 개 되더라. 그러고 클리셰마다 매뉴얼을 달았다. 간략한 역사도 더했다. 해당 디자인 전략이 원래 수립된 떄와 원래 목적을 잃어버린 때를 밝혔다.
붓꽃, 이반 반
pp. 162-163
램 콜하스 그러니까 이 책도 또 다른 협력 또는 충돌이 되는 셈이군?
마이클 록 어쩌면, 또는 우리에게 중요했던 과거 협력 사업을 재구성하는 한편, 스튜디오를 한정된 순간에 결부하기보다 좀 더 통시적으로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스튜디오는 하나의 형태로 머무는 일이 없어 계속 변하니까, 그 과거와 현재를 좀 어지럽더라도 재미있게 연결해보고 싶다.
알레스 일종의 직업적 노스탤지어?
콜하스 노스탤지어는 아니겠지.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는 인위적으로 깊이를 구축해야 하니까.
록 궤도를 추적하면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충동이 있지만, 모든 궤도는 결국 환멸로 끝나는 것 같다.
알레스 언제나 그렇지. 어떤 역사건 최종 단계는 그 역사를 잊고 싶은 이유가 된다.
콜하스 맞다. 나는 이게 노스탤지어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기는 하다.
알레스 무엇을 찾을지 모르니까.
콜하스 또는 무엇을 찾지 못할지 모르기도 하고.
피상, 마이클 록
p. 176
공간은 골칫거리다.
공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픽 디자이너는 공간에 집착한다. 물건사이글자,글줄, 칼럼, 페이지, 내부카운터, 주변사방 공백, 경계선, 틀이 다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좋아하고 거의 종교적으로 집착하는 건 여백이다. 현대 디자이너로 교육받은 우리에게, 여백은 온전히 가둘 수 없는 신화적 아우라를 내뿜는다. 여백을 통제는 물론 인지하는 일부터가 디자이너의 기본 마법에 속한다.
여백은 인쇄면 현대화가 낳은 2차원적 부산물이다. 지난 세기 초 얀 치홀트, 헤르베르트 바이어, 알렉산드르 롯첸코,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 아방가르드 거인들이 발명하기 전까지, 여백은 독립된 개념으로(비평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시각적 파생 상품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1930년에 치홀트는 "여백은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능동적 요소가 될 것이다"라고 단정한다.("될 것이다"에 주목할 것.) 타이포그래피에서 일어난 혁명은 네거티브 공간을 되살린다. 공백은 채워지고, 카운터는 식민지화된다.
✨벽을 응시하며, 루치아 알레스
pp. 219-220(이렇게 끝난다)
벽이 돌아온다는 것은 곧 건축에 정치가 돌아온다는 뜻이므로, 이제는 멍하니 응시하던 자세를 고쳐 똑바로 벽을 쳐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투바이포는 우리 주변에서 급속도로 자라나는 장벽의 우주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정학적 도상을 창출할 수도 있겠고, 이를 그래픽 작업의 주제로 삼아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편집증적 시각 기억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도상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격리 벽은 이미 연예 이미지뿐 아니라 감시 카메라 이미지와 보안 기록도 재료로 삼는 멀티미디어 장치의 일부가 된 상태다. 이런 벽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은 잃어버린 인지 기술을 다시 몸에 갖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항시 감시당하는 기술을 통해 어디에 어떤 공간이 구성되고 있는지 묻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옮겨보자. 건축의 느린 속도는 투바이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매체 사이에서 결함을 전용할 여지, 그리고 거친 수단을 통해 빠르고 매끄러운 흐름에 간섭할 여지를 주었다. 그러나 두 영역의 교환 속도가 단일한 피드백 회로로 단축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비판적 결함 공간이 존속할 수 있을까?
아메리담, 미국은 어떻게 네덜란드가 되는가, 마이클 록
p. 290
초자아는 이드를 경멸하는 한편 조금은 부러워한다. 그들의 방임과 자유를 부러워한다. 이드는 강연장에서 인기다. 의로인이 제시하는 사소한 제약에 시달리는 디자이너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드는 자신의 '개성'에 올라타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동시에 이드의 스튜디오는 거의 언제나 버둥댄다. 리더의 한계를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초자아는 저명한 집단을 이룬다. 루더, 크라우얼, 뮐러브크로만, 호프만, 빌, 비넬리, 트뢰만, 치홀트 등이 이에 속한다. 여러 면에서 그들이 끼치는 영향을 더 깊다. 그들의 방법론이 그만큼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드는 분야를 현혹한다. 베이커, 슬리허르스, 베르나르, 로버트 브라운존, 피터 새빌, 니코 판스톨크, 제임스 빅토어, 슈테판 자그마이스터 등이 그들이다.
두 캠프 사이에서 또 다른 스타일이 등장한다. 바로 '광대'다. 냉소적인 광대는 두 진영을 모두 조롱한다. 캘먼이 대표적이다....
박물관에 관해, 수전 셀러스
p. 372
요컨대 MO의 목표는 단순히 존재하는 데 있다. 일상 박물관은 일종의 프레임이고, 아직은 텅 빈 프레임이다. 실천 없는 이론이다.
디자인 박물관이 주로 공간과 의미를 통제하려 한다면, MO는 그런 통제권을 풀어놓으려 한다. 전통적 박물관이 질서를 중시한다면, MO는 혼돈을 환영한다. 다른 박물관은 아름다움을 좇는다. 우리는 흥미를 좇는다. 디자인 박물관은 디자인을 자율적 제안으로 추출한다. MO는 디자인을 외부 없는 실천으로 본다.
*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얀 판토른, 윤원화 등이 공역
그래픽 디자인 이론-그 사상의 흐름, 헬렌 암스트롱 엮음, 이지원 역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여행, 안그라픽스, 200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67-1968년 하버드대학교에서 한 <은유The Metaphor>강연이 생각난다.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The Garden of Forking Paths
마이클 베이루트가 엮은 『디자인을 다시 생각하며』
비어트리스 워드의 에세이 「투명한 유리잔Crystal Goblet」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은 저서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
*1709년에 개정된 '앤 여왕 법'
*1993년 MIT 출판사에서 『건축 쓰기Writing Architecture』 시리즈
*1972년 건축사가 콜린 로가 『다섯 건축가Five Architects』
건축이론가 베르나르 카슈의 『지구는 움직인다Earth Moves』
<Post-Occupancy>는 AMO와 투바이포의 공동프로젝트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통념 사전Le Dictionnaire des idées reçues』
펭귄 클래식북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디자이너를 위한 그리드 시스템, 요제프 뮐러브로크만
필립 메그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찰스 젠크스가 말한 '이중 코드double-coding'의 역동적 모델을 제시한다.
안톤 베이커의 포스터들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
야프 판리스하우트 <AVL 마을 AVL Ville>
윌리 코요테가 등장하는 옛 애니메이션
*GE의 스카이돔 장관Skydome Spectacular
제너럴 시가의 전방위 영화Movie in the Round
임스 부부가 IBM 전시관 천정에 스크린 아홉게를 설치하고 영사한 '인간 벽에서 본 광격View from the People Wall 등이 있다. 모두 이제는 흔한 아이맥스의 선조 격이다.
앤디워홀 <내외부 공간Outer and Innerspace> 1965
2001, 그레이 룸, 2호 p.6-29 '이미지에 포위되다. 임스 부부의 멀티미디어 건축
*호랑이의 자식, 오사카 엑스포
새로운 책Nowa Ksiazka. 도시 공간의 분할 스크린
**프린시피아 디스코디아, 서양은 어떻게 패배했는가Principia Discordia-or How the West was Lost. 프노드Fnord, 체계적 세뇌 결과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암호 문자를 처음 밝힌 자료이다.
*폴 엘리먼의 <베니스의 사이렌Sirens of Venice>
*엘렌 윌리스가 말하는 섹스
**루치아 알레스 "벽을 응시하며"라는 글...넘 젛다. 사랑해여.
**루치아 알레스, 엔리케 워커, 마크 위글리, 릭 포이너 글 더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