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몸, 일레인 스캐리, 메이 역, 2001, 오월의 봄
The Body in Pain: The Making and Unmaking of the World, Elaine Scarry, 1985
서론
육체적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
p. 9
...어느 언어에는 다양한 수준으로 변하는 고통의 몸 경험felt-experience을 기록할 수 있는 특정 소리와 단어들이 있지만, 다른 언어에는 이 소리와 단어들에 상응하는 소리나 단어가 없을 수도 있다.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작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필록테테스Philoctetes는 변화하는 여러 울부짖음과 비명을 쏟아낸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그의 울부짖음과 비명은 정식 단어들(그중에는 열두 음절짜리 단어도 있다)로 표현되지만 영어에서는 상응하는 말을 찾기가 어려워서, 어느 번역본에서는 구두점에만 변화를 준 "아"라는 단어 음절(아! 아!!!)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 밖의 많은 예를 열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매우 좁은 변동 법위를 보일 뿐이며, 따라서 핵심 문제는 결국 보편적으로 같다. 이 핵심 문제는 특정 언어가 유연하지 못하다거나 특정 문화가 어떤 표현을 저어하는 데서 온다기보다는 고통의 완전한 경직성 자체에서 온다. 즉 고통이 언어에 저항한다는 점은 단지 부수적이거나 우연한 속성 중 하나가 아니라 고통의 본성이다.
왜 고통의 핵심에 이러한 언어의 부서짐이 존재하는지, 또 왜 고통이 언어의 부서짐을 필요로 하는지는 앞으로 많은 페이지에 걸쳐 점차 분명해질 것이지만.....
p. 10
육체적 고통은 무언가에 대한 것이거나 무언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상object을 갖지 않는다는 바로 이 이유때문에, 육체적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더 언어로 대상화objectification되는데 저항한다.
p. 10-
...고통의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이 다섯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오랜 노력에 참여했던 이들의 명단 전체에서는 매우 일부일 뿐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몸소 큰 고통을 겪은 개인들이다....고통이 울부짖음과 신음이라는 전-언어로의 역행을 일으키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언어의 분쇄를 목격하는 것이다. 반대로 한 사람이 그 전-언어에서 빠져나와 감응력Sentience(고통과 즐거움 등을 느낄 수 있는 능력)상의 사실들을 투사하여 말로 만들기 시작할 때 거기 현전하는 것은, 언어 자체가 탄생하는 지점에 현전하도록 허용된 것과 거의 마찬가지이다.
때로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를 대신에 말하는 사람들이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내곤 한다....아마도 가장 명백해 보이는 통로는 의학이다{고통의 언어를 만드는 두 번째 영역}....오늘날 고통의 생리학을 설명하는 이론적 모델 중 가장 설득력 있고도 정확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델을 만든 연구자는 새로운 통증 진단 도구를 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통증 진단 도구는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의 개별 특징을 이전에 가능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했다...통증이라는 의학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거나, 의학의 맥락에서 통증을 표현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진단 설문지의 매개 구조를 통해, 언어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드러내는 외부의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언어에 대한 이 같은 믿음은 의학의 맥락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에서도 나타난다. 의료 병력이나 진단 설문지와는 다른 종류의 언어적 기록인 국제앰네스티의 출판물, 개인의 상해 재판 기록, 개별 예술가들이 쓴 시와 이야기들도 고통에서 언어로의 이행을 기록한다. 이런 기록들은 고통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다섯 영역 중 나머지 세 영역을 이룬다.
...고통에서 가장 중대한 사실은 고통이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며 고문에서 가장 중대한 사실은 고문이 지금 일어나는 중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소식지의 언어는 가능한 한 대단히 급박해야 한다.
육체적 고통이 언어 안으로 들어오는 네 번째 영역은 법정이다. 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압력 아래에서는 변호사도 언어의 발명자이자 다른 사람(원고)를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육체적 고통이라는 현실을 고통받고 있지 않는 사람들(배심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으로 고통을 말하기 위한 언어가 창조되는 다섯 번째 원천은 예술이다....고통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개별 사례들이 존재하며, 이 사례들은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위안을 제고앟ㄴ다. 그 말들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기 떄문이다....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이 가져오는 정치적 결과
pp. 21-22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긴 하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을 대신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제거하고자 할 때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단편적인 언어화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육체적 고통은 언어를 매우 끈덕지게 공격하며, 그래서 환자, 의사, 앰네스티 활동가, 변호사, 예술가들의 말을 살펴봤을 때 고통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한 언어 전략은 몇 개 안 되며 계속 반복된다. 이 언어 전략들은 무기라는 언어적 기호를 중심으로,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책에서 '작인 언어language of agency(여기서 작인은 몸에 고통을 일으키는 사물을 뜻한다)'라고 칭할 언어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언어적 기호가 본질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서 주의 깊게 통제되지 않을 때 엇나간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완전히 반대되는 목적에 의도적으로 동원되기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이 가시화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더한 비가시성 속으로 내몰고, 고통의 제거를 돕는 게 아니라 고통 가하는 일을 돕고, (의학, 법, 예술에서처럼) 문화를 연장하는 게 아니라 문화를 해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pp. 22-23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확신하는 것이며 고통에 관해 듣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다....몸으로 느낀 고통의 속성들felt-attributes of pain이 언어적 대상화라든지 다른 수단을 통해 가시적인 세계로 끌어올려진다면, 그리고 이 대상화된 속성들의 지시 대상이 인간의 몸임을 이해된다면, 어떤 이의 고통이라는 감응력 상의 사실을 다른 사람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몸으로 느낀 고통의 속성들이 가시적인 세계로 끌어올려지기는 했으나 인간의 몸이 아니라 다른 지시 대상에 붙게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고통의 강렬한 생생함이나 논박할수 없는 실제성reality(이 부분 실재성이라고 생각해야 라캉에서 시작되는 실재와 헷갈리지 않을 듯 하다.), 또는 고통이 지니는 '홗리성' 등 몸으로 느낀 고통의 특성들이 몸에서 분리・전유되어 다른 무엇, 즉 그 자체로는 이러한 속성들을 결여하 무엇, 그 자체로는 생생하지 않거나 실제가 아니거나 확실하지 않은 무엇의 속성으로서 제시될 수도 있다. 이 책의 논의 전반에서는 이런 과정을 '유추 입증analogical verification' 또는 '유추 실증analogical substantiation'이라고 부를 것이다.
p. 27
...단순히 고통이 무기(또는 상처)의 이미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무기의 이미지 없이는 고통이 거의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채찍과 전갈, 뜨거운 무쇠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는 무한한 고통을 개념화할 수가 없다"며 곤혹스러워하는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의 말을 이해 못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고통pain'이라는 말 자체의 어원이 '처벌punishment'이라는 뜻의 '포에나poena'라는 사실은, 고통이라는 내밀한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너무도 기본적인 행위를 하는 데도 정신적으로 공중제비를 넘는 일이 필요함을, 다시 말해 몸에 고통을 발생시킨 요인을 제시할 수 있는 외부 사회 환경으로 전환하는 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p. 36
길게 봤을 때, 우리는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창조라는 더 큰 틀 안으로 열려 나가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러면서 육체적 고통에 관한 이야기도 팽창하는 본성을 지닌 인간의 감응력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감응력은 '몸으로 느끼는 살아 있다는 사실'로서, 때로 우리에게 지극한 행복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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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과 함께 읽어볼 것.
**서론만 읽어서 다시 읽어야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