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건축을 위하여, 마이클 베네딕트, 계소라 역, 2002, 미건사
For an Architecture of Reality, Michael Benedikt, 1987
p.8
각각 다른 형태로 소통하지만, 소설과 시는 "전달하고자" 의도하는 공허한 현실의 창이다. 그 실체는 잠재적이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이는 스스로 포괄하는things-in-themselves 명백해 보이는 세계를 향한 현실이다. 반면 저런류의 집은 의사소통이나 '적절한' 메시지를 창출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다소 오만하게 사용되는 상징 이상의 무엇을 의도하는 듯 보인다.
p. 20
...물리학에서부터 사회학을 망라하는 최근의 과학적 사고는, 데이터, 매스컴의 사건들, 여론, 광고와 이 모든 교류 가능한 것들의 결탁으로 만들어지는 엔터테인먼트로 끊임없이 산만해진다. 이는 인용의 체계에 관련된 중립을 지키며, 심리적 세계관, 나아가 휴머니즘에 관한 정당성으로 설득되는, 현실은 "알 수 없음"이라는 가정까지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인용 부호 없이 더 이상 "현실"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지 (혹은 인용부호 없이 말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p. 28
그렇다면 건축가의 "예술을 향한 맹렬함", 말하자면 예술의 독특하고도 어려운 "비현실성"을 달성하려는 분투가 있다면, 그 시도에 해 두었던 표시들을 잃을 것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최근의 건축사에 표현된 모든 "비-현실un-realities"들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은가?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꿈의 건축, 게임의 건축, 허상의 건축, 공연의 건축(공연 전의 건축, 재공연 되는 건축), 그리고 농담의 건축 같은 것들을 말이다.
p. 32
현실적임realness은 네 가지 요소로 분류될 수 있고, 그 마지막 요소는 두 양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존, 있음presence,
의미significance,
재질감materiality, 그리고
비어있음emptiness (emptiness1, emptiness2)
p. 48
건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볼 수 있는 명백함,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건물이 어떤 방법으로 보이는지는 모두 위 두 가지 사항을 반영하는데 필수적이다. 이는 재질감에서 건물의 현실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고자 함이다. 폐허와 아주 오래된 건물들은 설명한다. 닳고 보수된 흔적, 갈라진 틈과 붕괴는 모든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명쾌한 재질감이 존재와 의미와 결합될 때 이 구조들의 현실됨은 지워질 수 없다. 폐허와, 우리의 추론으로 미루어 볼 때는 무덤덤하고 수수께끼 같은 꽤 괜찮은 지역 특유의 건물들(거의 디자인 되지 않은)의 힘을 설명하는 현실됨에 관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비어있음emptiness이다.
p. 50
그렇다, 비어있음은 의심할 바 없이 말로 표현하기에 가장 어려운 현실됨의 요소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는 직감적으로 어떤 면에서 어떤 면에서만 분석될 수 있으며, 그 어느 때 보다도 언어로 시사함이 필요하다.
p. 54
자기도취 없이 디자인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수사법 없이, 교모함, 자만, 혹은 이끌어낼 이익 없이 형태를 만드는 것 말이다. 소수의 건축가만이 원숙기에 성공한다. Louis Kahn은 그러기 위해 공개적으로 분투했던 자이며, Fort Worth에 있는 Kimbell Museum과 La Jolla에 있는 Salk Institute에서 성공했다. 비어있음에 대한 Kahn의 말은 "침묵"이었고 결과적으로 킴벨의 정면이 된 열려있는 사이클로이드 형 볼트를 느끼려면 그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포치들이 왜 멋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들이 너무나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Mies van der Rohe 익명과 무 스타일의 추구 역시 같은 식견에서 유발된 것이지만, 그는 합리성과 일종의 과대망상적 이상에 대한 집착으로 절름거렸다. 반면 Adolf Loos는 오래 전에 "침묵"에 도달했다: 그가 주장한 건축의 의미와 "언어"는 건물 자체-재료와 구출기술, 관능적이고 사랑받지 못한, 투명한 완벽함을 불러 일으키는- 이상 그 무엇도 아니었다.
p. 56
비어있음2은 공간 혹은 시간적 간격에 대한 개념에 조금 더 가깝다 일본인들은 여기서 의도하는 비어있음의 의미에 좀 더 부함하는 ma라는 단어를 가졌다. Ma! Ma는 디딤돌간의 틈새에 있고, 음악에서 음표간의 침묵 속에, 문이 스르르 열릴 떄 생기는 어떤 것 사이에 있다.....그러나 비어있음2은 ma 이지만 또 다른 어떤 것이다. 좋은 벽난로가 우리를 "끌어당김"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들어가 살아야 할 빈 방에 이끌림을 느낄 때, 미완의 것에서 지속의 기회를 보거나 닫혀있는 어떤 것에서 문을 찾아낼 때...비어있음2이 있다.
...신 이성주의자neo-rationalist들의 작품에 왕성하게 퍼져있는 침묵과 이 침묵, 이 비어있음은 다르지 않은가. 그들의 것은 묘지의 침묵이고, de Chirico 그림의 초현실적 진공이며, 거기서 건축적 형태는 닫혀있고, 소리나지 않으며 진부하다. 그들의 침묵은 형언할 수 없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도 않으며 그저 갑자기 우리의 귀가 멀어버렸다고 믿게끔 만든다.
*으잉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어둠에서 벗어나기의 한국어 번역본 책 디자인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여기서는 본문 내지가 스노우지와 같이 맨들맨들한 종이로 되어서 색이 많이 번져있었다..ㅠㅠ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그런가, 원어는 주문했으니 한번 오거든 리뷰를 적어봐야겠다.)
*Danto,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