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로버트 베번, 나현영 역, 2011, 알마
The Destruction of Memory: Architecture at War, Robert Bevan, 2006
p.8
도서관과 미술관은 역사적 기억의 저장고이자 특정 집단의 현전을 과거와 잇고 현재와 미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증거다.
p. 16
해나 아렌트(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듯 "인간 세계의 실재성과 확실성은 무엇보다 우리를 둘러싼 사물이 그 사물을 생산한 활동보다 더욱 영구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친숙한 사물을 모두 잃는다는 것, 즉 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남김 없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 사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으로부터 추방당해 방향감각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집단 정체성과 이 정체성들의 견고한 연속상이 상실된 위험에 맞닥뜨리는 것이다(비록 현실에서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며 항상 변하지만 말이다).
p. 20
공동 서사는 집단 내의 개인이 아니라 기억을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세대들의 연속과 관계된다. 우리는 어느 정도 건축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이 경험을 기억하고 타인의 경험을 전해 들으며 세계 내에서 우리가 위한 공간을 인식한다.
pp. 21-22
정체성을 밝히는 시금석이 제자리에 없으면 기억은 파편화되고 뒤죽박죽되며 집단 전체와 개개의 구성원은 강요된 기억상실을 겪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유산을 잃어버린 피해 집단과 그 파괴 집단 모두에게 고스란히 들어맞는다.
p. 135
예컨대 지나치게 조명되고 신화화된 '블리츠 정신'Blitz spirit(일명 '블리츠'독일어로 벼락이라 불리는 독일의 영국 대공습[1940-1941] 당시 런던 시민들은 밤마다 폭탄 세례가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침착하게 일상생활을 꾸려나갔고 영국 정부는 대중 매체를 통해 이들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의 선전했다. 특히 런던 시민들은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틴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며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옮긴이) 뒤에는 당연한 우울과 불만이 무수히 감춰져 있다.
p. 217
바미안 석불이 경전에 입각한 우상파괴 운동의 영향으로 폭파된 것은 틀림없지만, 결코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폭파 과정에는 인종청소와 정복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pp. 282-283
베를린장벽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상품화가 일어났다. 1989년 12월 일반인의 기념품 사냥이 금지됨과 동시에 베를린장벽의 파편을 판매할 권리가 구동독 국영 기업 리멕스 바우Limex-Bau에 넘어간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의 파편들이 맞은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이 흥미로운 사건에 이어 통일 이후 복원된 드레스덴의 프라우헨키르헤에서도 폭격당한 교회 파편을 시계와 같은 기념품에 넣어 판매하는 일이 일어났다. 폴리 피버셤과 레오 슈미트는 <베를린장벽의 오늘The Berlin Wall Today>이라는 훌륭한 책에서 장벽의 상품화를 예수가 못 박혔다고 알려진 '성십자가True Corss' 파편의 사례와 비교해 연구한다.... 저자들은 베를린장벽의 파편은 바스티유 감옥과 프라우엔키르헤의 파편이 그렇듯이 역사적 기념물을 획득하고 공공 건축물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의 전형이라고 주장하며 기념품은 "죽은 경험"을 담은 용기라고 묘사한 발터 베냐민의 말을 인용한다. 이런 과정은 구조물의 육중한 물질성을 상기시키기보다 발밑으로 끌어내려 통제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보인다. 장벽은 이제 더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자본은 진정 최후의 승자다.
p. 303
좋은 이웃을 만드는 좋은 담장이란 없다. 담장은 공포와 방어적 태도와 타자성만 기를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로 여겨질 수 있다.
p. 309
재건은 그 재건을 가져온 파괴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건설은 파괴된 건축 환경을 이어 붙이거나 예전 삶의 결을 하나로 엮는 데 사용된다. 집단 기억에는 새로운 시금석이 놓인다. 한때 비의도적인 기념물, 곧 일상의 예배 장소와 도서관과 분수였던 것은 재건을 통해 파괴를 야기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의도적인 기념물이 된다.
p. 324
아무리 조작되었다 해도 재건을 원하는 일차적 동기는 연속에 대한 욕구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유산은 독일에 단절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 나라는 아직도 기억과 망각이라는 상반되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한다.
p. 328
'역사 도시' 뮌헨, 바르샤바, 모스크바, 키예프의 재건에는 진정성이라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964년 역사적 건물을 복원할 때 그 진정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베니스(베네치아) 헌장'이 채택되었고, 1994년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인 가운데 일본 나라에 모인 국제 보존 전문가들은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로 베니스 헌장의 정신을 확고히 재천명했다.
p. 333
장소성을 유지하려면 참상의 현장에는 사건의 물리적 현현이 필요한 듯 보인다. 우리는 건축적 기억상실을 요구하는 압박에 저항함으로써 과거를 회피하기보다 기록하고 설명하는 기념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진실이다.
p. 340
....최근 비평가들은 전통적 의미의 기념물이 정확히 아도르노가 지적한 위험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념물은 사람들을 더는 기억하지 않게 만들고 실제 기억은 고정된 대상을 세우자마자 바래기 시작한다. 기념물은 여느 인공물처럼 도시경관의 한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 예술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반기념비적' 활동을 펼쳤다. 독일 미술가 호르스트 호하이젤은 카셀에서 강제 추방당한 유대인을 기리며 유명한 '부정형negative form' 기념물을 창조했다. 유대인 자본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나치스에 의해 파괴된 분수 터에 깊은 깔때기 모양의 구덩이를 판 뒤 컴컴한 땅속으로 물을 뿜게 해 예전 분수의 거울상을 만든 것이다.
p. 341
호하이젤이 인식했듯이 부재나 공허 역시 마찬가지로 강력한 상기의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을 극대화하려면 공허는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유대인 박물관에서처럼 건물 내부나 구조물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 부재는 현전과 대비될 때 가장 쉽게 눈에 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 줌 돌무더기로 화한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 도심 속의 공허를 '자본주의 진영을 전쟁 도발'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언명으로 보존되었다. 이곳은 동독 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동독 붕괴 이후 독일 정부는 동독의 기억과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을 삭제한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내걸고 교회의 재건을 추진했다. 이 경우는 건축물의 파괴가 아니라 공허를 채우는 행위가 망각을 부추긴다고 볼 수 있다.
p. 34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은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를 '걸작masterpiece'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뉴욕의 건축비평가 허버트 머스챔프는 관통된 금속성 잔해가 프랭크 게리와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p. 369
건물을 세운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해도 죽은 건물은 사어처럼 슬픈 웅변이 될 수 있다.
*영국 건축 잡지 편집인 출신의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그가 많이 언급되지 않은 유럽 역사를 언급한다 한지라도, 동양의 한국에서 있는 나에게는 세계사 책을 열어보는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문학과 출신이 번역가이기 때문인지 한나 아렌트> 해나 아렌트 처럼 일반적인 표기법과는 다른 인명들이 있었다.
-이런 주제로 한국에서 책이 쓰인다면 무엇이 등장할까?
*학부 수업시간에 바미안 석불의 붕괴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의 유적도 아니지만 눈물이 찔끔났었다.
*문화청소Cultural Cleansing
디즈니화Disneyfiction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A Study of Central Dilemma Facing Modern Man, 1958
알도 로시 책
에이드리언 포티
피에르 노라, 기억의 터 lieux de mémoire
H.G. 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