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이승수 역, 2019, 마음산책
Dove Mi Trovo, Jhumpa Lahiri, 2018
p. 5
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낀다.
추억이나 고통, 즐거움이 있던 곳을 떠날 때 그 슬픔이 더 크지는 않다.
충격을 받을 때마다 출렁이는 단지 속 액체처럼 이동 자체가 날 흔든다. -이탈로 스베보, 『에세이와 흐트러진 페이지』
p. 13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길에서
p. 17
인생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을 한 남자
사무실에서
p. 23
그는 이 년 전에 죽었다. 이곳에서 죽은 건 아니지만 그의 뭔가가 남아 있어서, 나는 이 방이 무덤이라 생각한다.
매표소에서
pp. 78-79
길 끝에 멋진 극장이 있다. 18세기 건축물로 이 헐벗은 도시에서 몇 개 안되는 보석들 가운데 하나다.
바다에서
p. 121
바깥에서 보니 인공조명이 환히 비춘 레스토랑이 사람들로 가득 찬 수족관 같다. 모두들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천천히 움직인다.
이제 해변에 나 혼자만 있지 않다. 다른 아이들이 유리 큐브에서 빠져나왔다. 해안으로 달려가 소리치고 자갈을 던진다. 아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빌라 잔해 사이 동굴에 숨는다.
밖에는 맹렬한 소음이 있다. 요란한 바람과 바다 소리, 모든 걸 먹어치우는 듯한 파열음, 왜 그 요동치는 소리가 이리도 우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지 궁금하다.
문구점에서
p. 151
무지한 것도 매력으로 보이는 숭고한 사랑의 단계에 있다.
잠에서 깨어
p. 165
오늘 잠에서 깼을 때 난 일어나지 않는다. 욕실로 가서 몸무게도 재지 않고, 주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 전에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지도 않는다. 오늘 도시가 내게 인사하지도 응원해주지도 않는다. 오늘 도시가 내게 인사하지도 응원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조용히 떠나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아무 데서도
pp. 189-190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
구성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줌파 라히리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역자에 대한 설명은 있어도 저자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면지를 반짝반짝한 미광이 있는 용지를 사용해서 예쁘다.
표지 일러스트에 대한 크래딧이 없어서 아쉽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영국인인데, 이탈리아로 이민을 간 뒤 이탈리아로 글을 쓴다.
이민자 작가에게 언어는 무엇일까.
-하나하나의 시퀀스가 있기 보다는 shot으로만 이루어진 소설.
로맨스가 하나의 삶의 동력이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