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사진과 페티시즘, 이이자와 코타로, 김승곤 감수, 이병용 역, 1996, 타임스페이스

사진과 페티시즘, 이이자와 코타로, 김승곤 감수, 이병용 역, 1996, 타임스페이스

Photography, and Fetishism, 1996, 







‘본다’는 욕망 /죽음에 이르는 사진


p.38

서울 시내에 사는 보일러 업자 이동식(42세)은 퇴폐 이발소에 근무하는 면도사 김경희(24세)를 누드사진을 찍어준다고 꼬여서 교외 산 속으로 데리고 갔다. 이동식은, 옷을 벗으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이 약을 먹어라고 하면서 청산가리를 넣은 캡슐 다섯 알을 건네준다. 그것을 먹은 김경희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이동식은 21장의 컬러사진으로 기록한다. 물론 사체의 옷을 벗기고 누드를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동식은 광적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7년 전부터 카메라 잡지와 사진 공모전 등에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 그것은 예술이다. 나는 예술사진을 찍은 것이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죽음’의 이미지는 수많은 전쟁사진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이 사진술의 탄생 이래 가장 빈번하게 등장해 온 테마였다. 그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인 ‘성’의 이미지와 결부될 때 그 사진은 우리들에게 더없이 강렬한 충격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술의 발명에 의해서 우리는 비로소 명확한 공통의, 그리고 소유 가능한 ‘죽음’과 ‘성’의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





순수소녀를 찾아서/  루이스캐롤, 아라키 노부요시


p.60

…”소녀에게 맨살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소녀’라고 하는 환상의 ‘여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하는 표현은 옳은 것일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소녀가 한순간 성년의 ‘여성’으로 변한다는 것은 현실에는 있을 수 없다. 그 자체가 토미오카의 말처럼 ‘환상’이다. 그녀들이 남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래 그 불가능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소녀와의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을 유린하는 일일 뿐 아니라, 단적으로 말해서 범죄이다.…

   소녀를 향한 성적 욕망이 성취되는 일은 결코 없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 사이의 허공에 떠있게 된다. 



예시로 루이스 캐롤과 아라키 노부요시를 들고 있다. 





부분, 또는 시선의 왕국 / 마르크 아탈리 


pp.152-153

페티시즘이라고 하는 기묘한 심리적 기구의 중심 가운데 하나는 부분과 전체의 도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보통 부분은 전체에 종속되어 있고, 그 일부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부분이 비대화되는 상황이 있다고 한다면, 환상과 광기의 영역에 한 발 들여놓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고 해야 할까. 페티시즘의 환상 속에서 부분과 전체의 도착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서 부분은 전체와의 관계를 상실하고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부분을 끌어모으면 전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것으로 이미 하나의 전체인 것이다. 분할도, 분류도, 명명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기묘한 전체이다. 그래서 페티시스트에 있어서 눈, 귀, 손, 다리, 성기는 어떠한 것의 일부가 아닌 전부이며, 그들의 환상이나 욕망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있는 유일한 용기가 된다. 

부분과 전체의 도착(부분의 전체화)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먼저 절단이고, 다음에 절단된 것의 특권화이다….


마르크 아탈리의 사진들을 예시로



p.155

여기에는 페티시즘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반복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이다….어떤 특이한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 - 그런 차이와 동일성의 복잡한 유희가 페티시스트들의 시선의 왕국에 화려함을 더해준다. 바로 ‘포름 속의 잠재되어 있는 생명’이 반복되는 리듬으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p.156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절단과 특권화에 의해서 시각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촉각이(때로는 취각, 청각, 미각조차) 생생하게 자극되는 경우가 있다. 확실히 페티시즘의 단서가 되는 것은 시각이지만, 그것은 ‘본다-이해하다’라는 매끄러운 매커니즘으로 수렴되어갈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지식으로 덮여서 은폐되어 있던 다양한 야만적인 감각을 되살아나게 할 수가 있다. 생각해 보면 신체의 일부(목, 손, 머리카락, 위장 등)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거나 성장해서 일종의 기형적인 전체를 형성한다는 신화를 갖고 있는 민족은 많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절단된 남근이 바다에 떨어지고, 그 거품의 한복판에서 태어난다. 페티시즘의 기묘한 힘은 우리들의 산화적인 상상력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선의 유토피아 / 장 프랑소와 존베르


pp.163-164 

보통은 무엇인가를 ‘볼’ 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보여지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하나로 세트되어 있다. ‘보는’ 것에 의해서 상대를 소유한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에 의해서 자신이 소유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훔쳐본다는 행위에는 그러한 시선의 왕복운동이 결여되어 있다. 훔쳐보는 자는 일방적으로 대상을 ‘볼’ 뿐이다. 상대로부터 ‘보여지는’ 것, 그 시선에 의해서 상처받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훔쳐보는 것에 의해서 시선에 의한 소유의 욕망은 완전히 성취된다. 그는 열쇠구멍이나 커튼 틈새로 보이는 광경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소유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시선에 있어서 지상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로타와 같은 로리타를 활용한 사진들의 설명을 '순수소녀를 찾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