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아카이브: 마르셀 뒤샹부터 소피 칼까지 요식주의에서 비롯된 20세기 예술, 스펜 스피커, 이재영 역, 2013, 홍디자인
The Big Archive, Sven Spieker, 2008, MIT press
7. 사진의 진본성에 의문을 제기하다.
pp. 220-220
로드첸코의 기념물 파일은 사진 기반의 기념물 아카이브를 만들려는 19세기 노력과 비교된다. 그것은 원 기념물이 유실되었을 경우 재건에 이용하기 위한 청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알브레히트 마이덴바우어의 「역사적 기념물 아카이브」(1881)가 적절한 예가 되겠다. 이 아카이브는 185개 지역에 있는 837채 건축물들의 10,310장의 도판을 담고 있다. 마이덴바우어의 생각-이는 세계 아카이브를 만들려 한 나폴레옹의 계획에 대한 기념이자 추모이기도 하다-은 전 세계의 모든 역사적 건축물들의 사진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이덴바우어는 건축물-그리고 함축적으로는 그의 아카이브에 담길 건축적 기념물들의 사진-이 전통적인 아카이브 매체인 글보다 낫다고 믿었다. “역사를 통해 건축적 기념물들은 이해 가능한 진정한 언어를 말해 왔다. 과장과 변경과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가장 엄격한 해석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글로 쓰인 메시지와 비교할 때, 그것들은 항상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그 둘이 서로 상충된다면 우위를 갖는 것은 항상 건축물이며, 최소한 글로 된 메시지의 불완전함이라도 드러내줄 것이다.” (필자 번역)
로드첸코의 레닌 파프카papka, 사무파일, 레닌의 일생을 찍은 스냅 사진들과 기타 공문서 기록들을 모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초반에 중심이 된다.
p.224
로드첸코는 자신의 파일이 별개의 기호들(이미지들)로 구성되긴 하지만, 거기에 적합한 수용 양식을 갖는다면 개별적 이미지들 간의 차이는 점차 지워지고, 결국 그것의 기념적 기의, 즉 레닌으로 귀착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롤랑 바르트라면 개별적 기표들을 희생하여 하나의 보편적 기의를 얻는 그러한 아카이브의 소비를 ‘신화적’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바르트의 개념에서 신화란, 선행하는 기호들의 집합을 하나의 보편적 기의로 축약하여 이야기하는 2차항적 기호학 체계이다. 1로드첸코의 파일을 신화로 이해하면,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이미지들은 레닌의 일생에 대한 진본의, 도전받지 않는, 따라서 기념비적인 재현으로 귀착된다. 파프카의 이러한 신화적 소비에서는, 파일에 담긴 사진들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꾸며지거나 조작된 것은 전혀 없다는 가정이 불확실하나마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 개별적 기표들이 하나의 완전히 투명한 기의, 레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에서 ‘레닌’이라고 표시되는 기표는 언어적 체계의 최종 항이 아니다.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신화적 체계의 최초 항’이다. 2
p. 225
데이터베이스와 아카이브 간의 주된 차이점은, 데이터베이스가 모듈식-모든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든 재분류될 수 있다-인 반면에 PP 기반의 아카이브는 아키비스트가 채택하고 보존한 원래의 질서 개념을 중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20세기 말의 사진 아카이브들에서도 중심을 차지는 것은 순간들의 선형적 순서(드로이젠)가 아니라 그것들의 조합 및 연관 가능성이다.
로드첸코에 이어 한스-페터 펠트만의 <초상>(1994)작업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된 작품이 어떻게 아카이브의 위기를 극화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에 이어 수전 힐러의 <불명의 예술가들에게 바침>(1972-1976) 3을 보면서 이렇게 표현한다.
p.234
즉 이 엽서들에 포착된 순간은, 그 모든 자연의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린 순간이다. 따라서 힐러의 아카이브는 객관적 사실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유예된, 그리고 복제된 욕구의 저장소인 것이다.
크라카우어와 바르트의 풍크툼에 대한 개념을 비교한다.
p.238
두 종류의 풍크툼-하나는 편안하고 사적인(바르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낯설고, 멀고, 경제적 사회적 연속체로 향하는(크라카우어)-은 프로이트의 섬뜩함이 갖는 양극, 즉 편안한 측면-하이멜리히heimelig-과 그것의 상관물인 두렵고 은밀한 측면-하임리히heimlich-을 내포한다. 크라카우어와 바르트가 표현한 이 두 종류의 풍크툼-하나는 우리를 멀리 떼어놓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다가오도록 손짓하는-은 20세기 말의 사진 아카이브들에서 둘 다 찾을 수 있다.
왈리드 리드 <달콤한 이야기: 힐웨 의뢰>(1992-2004)
p. 249
베이루트의 사진 기념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달콤한 이야기>는 그것이 보여주는 건물들에 대한 영원한 기억이 아니라, 그것들의 미래의 소멸에 바쳐진 것이다. 즉, 보다 넒게 보면 트라우마가 가진 시간성의 특징인 과거에서의 미래(미래완료형 ‘그것은 그리 되어있을 것이다.’)를 나타낸다.
p.264
힐러와 리히터에서부터 라드와 미하일로프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말의 아카이브에서는, 이미지들 간의 관계가 형식적 배열 또는 범주들로 요약될 수 없다. 이 아카이브들은 기원이 되는 아르케와 서술을 부인함으로써, 엔트로피를 향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와 공유하는 경향이다. 크라카우어가 썼듯이, “사진가가 아무리 까다롭다고 하더라도, 그가 찍은 이미지들은 분산과 해체로 향하는 경향을 부정할 수 없다… 늘 그렇듯이 이미지들이 불문명한… 의미들의 경계로 둘러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4 위에서 논의된 아카이브들은 크라카우어가 말한 그 경계를 복제하고 있다. 그것은 질서와 조직을 주장하는 아카이브의 바깥에, 그리고 동시에 그 중심부에 놓여 있는 요소이다.
*Chapter 7만 읽음
앞 부분에 1924년 초기 초현실주의 르 코르뷔지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다시 읽어볼것
*보리스 미하일로프 <미완의 논문> 무슨 사진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사랑스러운 사람….넘 귀엽다.
베를린 C123에서 비슷한 작업을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름을 찾아 봐야겠다
*각주 미주로 빼는거 너무 싫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