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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홍성광 역, 2009, 을유문화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홍성광 역, 2009, 을유문화사

(Die)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A. Schopenhauer






p.326

...광기는 일반적인 징후가 아니다. 정신착란Delirium은 직관을 그르치게 하고, 광기는 사고를 그르치게 한다. 말하자면 미친 사람은 대체로 직접 현재의 것을 인식할 때는 결코 틀리지 않지만, 그들의 횡성수설은 언제나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과 과거의 것에 관련되며, 그럼으로써만 이러한 것의 현재의 것에 대한 관계에 관련된다. 그런데 그 때문에 나에게는 이들의 병이 특히 기억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들에게 기억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기억의 실마리가 끊어져서, 연속되는 기억의 연관이 없어지고, 일정한 연관을 유지하며 과거를 되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과거의 개별적인 장면은 현재의 개별적인 일처럼 올바르게 기억되고 있지만, 그들이 되살린 기억에는 빈틈이 있는데, 이들은 그것을 허구로 채운다. 그 허구가 언제나 같은 것이면 고정 관념이 되고, 그런 다음에는 그것이 고정 망상과 우울증이 된다. 또는 그 허구가 그때마다 다른 것이고 순간적인 착상이 되면, 어리석음narrheit이나 우둔fatuitas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미친 사람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때 그 에게서 이전의 이력을 알아내기가 아주 곤란하다. 이제 그의 기억에는 진실과 허위가 점점 더 많이 섞이게 된다. 직접적인 현재가 옳게 인식될지라도 그것이 망상에 의한 과거와 허구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날조되게 된다. 



p.327

미친 사람의 인식은 현재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물의 인식과 같다. 그런데 양자를 구별시켜주는 것은 동물은 본래 과거 그자체에 대한 표상을 전혀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과거가 습관을 매개로 하여 동물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그 때문에 예를 들어 개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이전 주인을 알아본다. 즉 그 주인을 보고 전에 길들여진 인상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흘러간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되살리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미친 사람은 그의 이성 속에 추상적인 과거도 늘 갖고 다닌다. 그러나 그 과거는 그에게만 존재하고, 어느 때나 또는 바로 지금만 존재하는 허구적인 과거이다. 그런데 이러한 허구적인 과거의 영향은 동물마저도 하는, 올바르게 인식된 현재의 사용도 방해한다. 



p.327-328

...그러한 마음의 아픔, 그러한 고통스런 지식, 또는 추억이 너무 괴로워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무너지게 되면, 그렇게 번민하던 사람은 삶의 마지막 구원 수단으로 광기에 호소한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나 고통에 시달린 정신은 말하자면 기억의 실마리를 끊어버리고, 허구로 빈틈을 채우며,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에서 광기로 도피하는 것이다. 



p. 332

... 욕망은 오래 지속되고, 요구는 끝없이 계속된다. 즉 충족은 짧은 시간동안 불충분하게 이루어진다...우리가 의욕의 주체인 한, 우리에게 지속적인 행복도 마음의 안정도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 오늘의 꿈에 H가 나왔다. 예지몽이었을까,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끔 꿈을 꿀 때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깨는 경우가 있었는데, 오늘은 꿈은 너무 사실 같아서 꿈이라고 생각치도 못했다.  

스스로 미화를 시키려고 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꿈을 꿨다는 사실로 막연하게 씁쓸해졌다.

꿈의 내용은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고, 이 글을 읽으니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나중에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 사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부정적인 감정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보통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쇼펜하우어는 내 기준에서는 용감한 사람 같았다. 


***익시온 :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를 모독한 죄로 영원히 도는 바퀴에 묶여 있는 사람임. 익시온이 신들의 초대를 받고 천상에 갔을 때 손님의 신분임을 잊고 헤라를 넘보려하자, 제우스는 구름으로 헤라와 비슷한 모습을 만들어 익시온으로 하여금 그것과 동침하도록 만들었다. 그 뒤 제우스는 그를 영원히 도는 바퀴에 묶어 영겁의 벌을 받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