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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 조르주 바타유, 조한경 역, 2009, 민음사

에로티즘, 조르주 바타유, 조한경 역, 2009, 민음사

L'erotisme, George Bataille, 1957





-심연은 여러분에게 말하는 나와 나의 말을 듣는 여러분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서로 교통(交桶)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의 어떤 교통의 방법도 원래의 거리를 좁힐 수는 없다. 여러분 중에 누가 죽는다면 죽는 것은 여러분 중의 누구이지 나는 아니다. 여러분과 나, 우리는 불연속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에로티즘, 상징의 에로티즘, 신성의 에로티즘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를 더욱 완성시켜 준다...미친듯한 열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얼핏 본 연속감에 기인한다.


-자아에 대한 느낌 너머로 고개를 쳐드는 성행위 중의 어떤 느낌은 불연속성과는 전혀 다른 상대방과의 어떤 연속성을 기대하게 한다. 성행위 중 상대방은 연속성의 가능성으로 제시되며 빈틈없는 개체의 불연속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파고든다. 


-성기, 성행위 등과 관계하는 욕설들도 비슷한 함몰의 결과이다. 천박한 매음을 하는 여자는 함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여자로써, 동물 못지않게 금기에 무관심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박한 매음을 하는 여자도 역시 사람이다...그녀는 함몰하는 줄 알면서 함몰한다. 그녀는 함몰하는 줄 알면서 함몰한다. 그녀는 스스로 인간임을 잘 깨닫고 있다. 그녀는 수치심을 모르지만, 자신이 돼지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개체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이전부터 누군가를 만날때마다 했었다. 

혹자는 이 것을 '거리두기'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이 단순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과 헤어지면서 그 심연은 해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가 된다고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성행위에 대해서 조르주 바타유는 우리가 유일하게 심연을 건너 연속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인과 연속적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로 이 때뿐일지도 모른다. 서로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으니까. 

****2013년 다이어리를 정리하던 중에 다시 검색을 해보니, 외국 도서 표지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베르니니Bernini의 <성 테레사의 법렬 Ecstasy of Saint 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