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욕망의 모호한 대상, 1977, 루이스 부뉴엘, 프랑스

욕망의 모호한 대상, 1977, 루이스 부뉴엘, 프랑스

Cet obscur Object du Desire, 1977Luis Buñuel,





- 피에르 루이 <여인과 꼭두각시>가 원작, 1898


- 물질에 대한 욕망, 성에 대한 욕망


- 콘치타 역할을 2인 1역으로 해서 독특한 느낌이었다. 좀 더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인은 욕정에 사로잡힌 마티유의 시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후에 마타유의 성에대한 욕망과 콘치타의 부에 대한 욕망은 극단적인 폭력의 형태로까지 나오는데 영화 후반부의 테러리스트 모습과 이어지는 듯 싶었다. 마지막에 한 여인이 피묻은 드레스를 다시 메꾸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처녀성으로 되돌아 가려는 모습이었는데, 마타유는 이를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인을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동시에 처녀성을 원하고 있어서 모순된 것 같았다.


- 오프닝에서 야자나무 배경에 빨간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 순결과 관능사이


- 라캉 : 결핍에서 욕망이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결핍이란 다른 것에 대한 것으로 끊임없이 대체될 뿐,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은 환유로서 작동된다. 





*2012년 다이어리


* 마그리트 그림을 닮은 포스터이다.


* <안달루이사 개>로 유명한 루이스 부뉘엘의 마지막 작품이다. 


* 다이어리에 이 영화에 대한 글 옆에 이런 글이 붙여져 있었다. 누구의 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홍상수 감독은 사랑은 없다면서 욕망에 눈먼 수컷들의 이야기를 반복과 대구의 스타일 속에 담아내고, 임상수 감독은 섹스를 화두로 이 세상이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 구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대우 감독은 섹스와 욕망을 품지만 결국 이 때문에 절망 속에서 패하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상처를 응시한다."



* 20대의 여성으로써 살아가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남자들이 상대 여자에게서 '처음'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러한 욕망은 소소한 스킨십이 아니라 섹스에 관해서 더더욱 엄격해지는 것 같았다. 처녀성에 대한 욕망은 매우 크고 그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간다. 경쟁을 기반으로 한 진화의 과정에서 이러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어딘가의 글에서 남성의 성기의 끝이 다른 남자의 정자를 뺴기위해 그런 모양으로 되었다는 것을 읽었는데, 어쩌면 '처음'을 추구하는 것이 동물적인 욕망과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최근에 흥미롭게 본 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는 제목부터 '처음'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었다. 물론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극중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메슬로의 욕구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나온다.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성에 대한 욕망을 보통 욕정이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욕정의 정은 '情' 이었다. 

감정을 뜻하는 한자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다. 

문득 최근에 '섹스파트너'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보곤 했었는데, 그러한 파트너도 어느정도의 호감과 감정 교류가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Friends with Benefits>, <친구와 연인사이>같은 영화에서는 파트너로 있다가 연인으로 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욕정에 情이라는 한자가 있는 것이 꼭 이상한 것은 아닌거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