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사랑들, 밀란 쿤데라, 방미경 역, 2013, 민음사
Risibles Amours, Milan Kundara, 1968
누구도 웃지 않으리
p. 12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
p. 95
나는 계속 이 깃발 생각을 했다. 그가 여자를 쫓아다니는 일이, 해가 흐르면서 점점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추적 그 자체가 문제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쓸모없는 추적인 경우 매일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쫓아다닐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절대적인 추적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다. 마르틴은 절대적인 추적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p. 99
과연 나 자신은 젊음이 의미하는 이 행동들을 언젠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모방하는 데 족하지 않는다면, 내 바른 생활 속에 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위한 작은 영토 찾기를 시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게임이면 어떻단 말인가? 내가 다 알고 있으면 어떻단 말인가? 단지 아무 소용없다는 이유로 나는 이 게임을 포기할 것인가?
히치하이킹 게임
pp. 131-132
대화는 점점 더 외설적이 되어 갔다. 그녀는 약간 타격을 받았지만 항의할 수는 없었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며, 게임을 하는 자에게 게임은 함정이다. 이것이 게임이 아니고 둘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면 히치하이킹한 여자는 한참 전에 벌써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팀은 경기 종료 전까지는 경기장을 떠날 수 없으며, 체스 말들은 체스 판의 네모 칸에서 나갈 수 없고, 경기장의 경계선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아가씨는 바로 그것이 게임이기 때문이 자신이 무엇이든 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콜로 키움
pp. 169-170
"...오늘날 돈 후안의 후예는 더 이상 정복하지 않고 다만 수집할 뿐입니다. 위대한 정복자 다음에 위대한 수집가가 뒤를 이은 건데, 다만 수집가는 이제 돈 후안과 전혀 공통점이 없어요. 돈 후안은 비극적인 인물이었어요. 죄의 낙인이 찍혀 있었지요. 즐거이 죄를 지었고 신을 비웃었어요. 그는 신성 모독자였고 지옥에서 종말을 맞았습니다"
"돈 후안은 어깨에 비극적 짐을 지고 있었는데 위대한 수집가는 그런 게 뭔지도 몰라요, 그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무게가 안 나가니까요. 돌무더기가 깃털로 변했지요. 정복자의 세상에서는 시선 하나가 수집가의 세상에서 십년간의 가장 열정적인 육체적 사랑에 값했어요."
"돈 후안은 주인이었는데 수집가는 노예지요. 돈 후안은 관습과 규범들을 뻔뻔하게 어겼어요. 위대한 수집가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고분고분하게 관습과 규범을 실행할 뿐이에요. 왜냐하면 수집한다는 것은 이제 예의범절과 올바른 태도에 속하고, 거의 의무로 여겨지니까요. 제가 잘못한 느낌이 든다면 오로지 엘리자베트를 취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죄책감인 겁니다."
"위대한 수집가는 비극과도 드라마와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요. 재앙의 씨앗이었던 에로티시즘은 수집가 덕분에 아침 식사나 저녁 식사, 우표 수집, 탁구, 또는 가게에서 쇼핑하는 것과 비슷한 게 됐어요. 수집가는 에로티시즘을 평범함이라는 원무에 들어가게 했지요. 그는 그것을 진짜 드라마는 결코 공연되지 않을 무대 장면과 무대 뒤편으로 만들었어요. 아, 여러분." 하벨이 비장한 어조로 외쳤다. "제 사랑들은 (그걸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대 장면들입니다."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도록
pp. 203-204
그녀에게 시작부터 좋지 않은 하루였다. 남편이 (삼십 년 전 신혼 시절에 그들은 이곳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그다음 프라하에 정착했고 십 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유언에 밝힌 기이한 희망에 따라 그를 이 소도시 묘지에 매장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묘지를 십 년 임대받았는데, 갱신하는 것을 잊고 기한이 넘어가 버렸다는 것을 며칠 전에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묘지 사무소에 편지를 쓰려고 생각했으나 관청과 편지로 일을 본다는 것이 온통 끝도 없고 헛된 일임을 기억하고는 직접 찾아왔다.
그녀는 남편의 묘 가는 길을 훤히 알고 있었는데도 그날은 묘지를 처음 보는 느낌이 들었다. 도히 남편 묘를 찾아낼 수가 없었고 길을 잃었나 싶었다. 그러다 마침내 깨달았다. 금색으로 남편 이름이 새겨진 사암 묘비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양 옆 묘들을 보아 이 자리임이 확실했다.) 전혀 모르는 이름이 금색으로 새겨진 검은색 대리석 묘비가 새워져 있었다.
황당해하며 그녀는 묘지 사무소에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묘의 임대 기한이 만료되면 자동적으로 없애게 되어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임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것을 알려 주지 않았다고 그녀가 비난하자 그들은 묘지에 자리도 거의 없고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너무도 화가 나서,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뭔지도 모르고 타인에 대한 존중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이 두번째 죽음, 죽은 자로서 존재하는 권리조차 더 이상 가지지 못하는 죽은 지 오래된 자의 죽음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pp. 341-342
...알리체의 이런 급선회는 사실 에드바르트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몇 주 내내 기울인 노력과 아무 상관도 없고, 에르바르트의 이성적인 논증과도 아무 상관 없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그것은 오로지 에드바르트의 순교 소식에, 그러니까 오류에 전적으로 근거했고, 심지어 이 오류와 알리체가 끌어낸 결론 사이에조차 그 어떤 논리적 연관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잠시 생각해 봅시다. 에드바르트가 순교의 정도까지 신앙에 충실했다는 사실이 왜 알리체로 하여금 신의 계율을 거스르게 해야 했을까요? 에드바르트가 조사단 앞에서 신을 배신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그녀는 에드바르트 앞에서 신을 배신해야 했을까요?
p. 351
바로 그래서 에드바르트는 신에 대한 열망을 느끼는 것이니, 왜냐하면 오로지 신만이 어떻게 보여아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로지 신만이 (유일하며, 존재하지 않는 그만이) 비본질적인 만큼 더욱이 더 존재하는 이 세계의 본질적인 안티테제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웃지 않으리.. 논문 앞에서는 거절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블랙코미디같은, 정말 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때문에 밀란 쿤데라를 놓지 못하는 것 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