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의 정신, 장 보드리야르, 배영달 역, 2003, 동문선
L'esprit du terrorisme, Jean Baudrillard, 2002
p. 5
(아르헨티나 작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말에 의하면) 1990년대는 이렇다 할 사건들의 부재로 '사건들이 파업한' 시대였다. 이제 파업은 끝나 버렸다. 사건들은 파업을 멈추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행위로 인해 지금까지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사건들을 집약해 놓은 완전한 사건, 즉 절대적인 사건인 '모(母)'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p, 13
정말 문제는 근본적인 적대감이다. 이러한 적대감은 (세계화의 진앙지이긴 하지만 세계화의 화신이 아닌) 미국이라는 유령을 통해, (역시 테러리즘의 화신이 아닌) 이슬람이라는 유령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덫에 걸린 승승장구하던 세계화가 그 원인이다.
pp. 18-19
힘의 관계항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결코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 자체가 강요하는 (혁명적) 상상계이다. 사실 시스템은 그것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현실의 영역에서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만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상징계로 싸움을 옮겨 놓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징계에 있어서 게임의 규칙은 도전・역전・경쟁의 규칙이다. 상징계에서는 죽음에 대해, 대등하거나 능가하는 죽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상징계에서는 자신의 죽음이나 자신의 붕괴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증여를 통해서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
p. 29
이미지는 사건을 소비한다. 이미지가 사건을 흡수하고, 사건을 소비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확실히 이미지는 사건-이미지로서 사건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준다.
pp. 30-31
현실에 대한 폭력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미지에 대한 전율이 추가되기보다는 오히려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현실에 대한 전율이 추가되는 것이다. 가상 같은 어떤 것, 즉 가상을 추월하는 어떤 가상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보르헤스 이후) 발라르는 궁극적인 것으로의 현실과, 가장 끔찍스러운 가상을 재창조하는 것에 대해 말한바 있다.
pp. 31-32
사건이 발생한 후에 사람들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 스펙터클의 과격성과 스펙터클의 야만성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기묘하고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테러리즘의 스펙터클의 스펙터클의 테러리즘의 강요한다.
pp. 35-36
...모든 시스템이 어떤 공격도 받기 쉬운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특히 전쟁은 해결책이 아니다. 전쟁은 이미 본(déjà-vu) 상황만을 보여 줄 뿐이다. 말하자면 전쟁은 군사력, 유령 같은 정보, 쓸데없는 집중 선전, 위선적이고 격정적인 말들, 생화학 테크놀로지 등이 범람하는 이미 본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전쟁은 걸프전처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 즉 비사건(non-événement)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바로 사건의 존재 이유이다. 진짜 엄청난 사건, 유일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되풀이되는 이미 본 가짜 사건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 행위가 해석의 모든 모델들에 대해 사건의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반면, 군사력과 테크놀로지를 어리석게 내세우는 전쟁은 그와 반대로 사건에 대해 모델의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따라서 내기는 겉치레일 뿐이고, 진정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미 본) 전쟁은 다른 수단들을 동원하는 정치 부재의 연장(prolongement)일 뿐이다.
*매우 짧은 글이다.
*학부때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의 대체어처럼 사용되곤 했는데, 역시나 이미지의 스펙터클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