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2001, 한국
Parasite, Jun Ho Bong
*개봉일에 후다닥 가서 영화를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만큼은 스포 당하기 싫어서 개봉날 보았다.
님포매니악을 보고 나왔던 2013년 이후로 올해의 영화라는 느낌이 영화관을 나설 때 그렇게 드는 편은 아니었는데, 영화가 끝난 이후 '올해의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집에 오는 길에 울컥하였다.
*한 쇼트 한 쇼트가, 한 컷 한 컷이 버릴 수 없었다.
마음속에 남은 몇몇 장면들.
- 물에 뜨는 수석.
- 높이의 위치로 계층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상/ 반지하/ 지하)
- 지하 벙커에 들어갔을 때, 기택의 가족은 가정부 부부를 보면서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19세라고 오인받을 수 있는 박사장과 연교의 소파 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싸구려 속옷을 이야기하면서 그걸 입으면 더 흥분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그 답으로 마약을 사달라는 말이었다. 그들도 속은 꿍꿍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들이 많았는데, 그보다는 그들은 가난과 더러움을 흉내낸다mimic; pretend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몇몇 게시판에서 예전에 '남자친구가 잠자리에서 욕을 써요'라는 고민 이야기를 봤고, 최근에 한 발표에서 '저희 장난꾸러기들은 더럽게 놀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는 꽤나 이상하게 보이고 들리는 순간들이었다. 일탈이라는 조건으로 '조건부 더러움'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박사장과 연교와 닮아있었다.
- 박사장과 연교의 소파 씬에서는 사실 '냄새'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지하철 타는 사람에 대한 냄새'를 이야기하다가 가난과 더러움을 흉내 낸다.
- 이 모든 복잡한 사건이 설명될 때, 한 노숙자와 김기사로만 설명이 된다. 매스컴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잘려나가고, 생략되고, 취사선택으로 보도되는 편집된 것들이라는 것이 다시금 생각되었다.
- 가난의 무계획성/가난하기에 눈감는 윤리의식에 대해서.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최우식)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고, 부자가 되어서 그 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가진다. 그 계획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난한 자들의 자존심?과 부유한 사람들의 심플함?에 대하여.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는 '중산층'이 없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혹은 보기 이전부터 스스로의 위치를 중산층이라고 무의식 중에 상정해놓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박사장에 가까운 '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사장와 연교의 대화에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순간, 나는 그들의 '편'이 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본 이후부터 지하철 냄새를 맡게 되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돈 없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을 싫어했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니 돈은 벌면 되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족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듣는 것이 싫어서 용돈이나 등록금을 스스로 벌었고, 지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듣는 것이 싫어서 내가 더 밥을 사곤 했었다. 이상하게 그 '돈 없다'라는 말은 언제나 상대적인 위치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조차도 종종 마음 속으로 그런 소리를 되뇌일 때가 있었다. 이런 상대성은 기택이 저택에서 지하벙커를 발견했을 순간과 비슷할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는 잔혹동화 같은 느낌이었다.
들킬까 조마조마하다가 초인종이 눌리고 예전 집사가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기존의 봉준호 영화들은 개인적으로 엔딩까지 보고나면 크레센도 기호처럼 감정이 작게나마 크게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기생충은 이 모든 것이 동그라미 모양에 가까웠고 계속해서 영화 내용을 곱씹게 되었다.
*기우에게 계획을 갖게 해 준 가족 희비극.
*함께 읽으면 좋을 듯 한 책.
조은, 『사당동 더하기 25』, 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12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