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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박물관1, 오르한 파묵, 이난아 역, 2010, 민음사

순수박물관1, 오르한 파묵, 이난아 역, 2010, 민음사

Masumiyet Müzesi, 2008, Orhan Pamuk

 

 

 

 

p.30

나 역시 책임감 있고, 제대로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벨과 결홀할 참이었고, 그것을 간절히 원햇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순결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이제 그녀를 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책임감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연결하는 또 다른 감정에, 결혼하기 전에 잠자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고 현대적'(물론 이 단어를 우리 자신에게 사용하지는 않았다.)이라는 착각에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우리를 가까워지게도 했다.

 

p.66

퓌순이 처음으로 나와 잠자리를 했다는 것만큼이나 내 머리에서 전혀 떠나지 않으며 나를 극도로 불안하게 했던 것은 그녀의 결단력이었다. 그녀는 전혀 수줍어하지 않았고, 옷을 벗으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p.95

하지만 그래도, 어떤 남자들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절망적이고 깊고 어두운 외로움 속에 남겨 놓는 균열과 상처가 내 영혼에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음을 그즈음 인식하기 시작했다. 

 

pp.240-241

그래서 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다고 믿으려 애썼으며, 내 이성 안에 순간과 초로 된 작은 묶음들을 만들곤 했다. 매초, 매분이 아니라, 오 분마다 한 번 슬퍼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 분짜리 묶음으로 된 하나의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하는 셈이 되었다. 첫 번째 오분이 지났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면,  그러니까 그녀가 늦는 것이 사실이 되면, 아픔은 못처럼 내 마음을 찔렀고, 퓌순은 언제나 약속 시간보다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늦게 왔다는 것을 떠올렸고(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그 당시에는 몰랐다.) 이후의 오 분짜리 묶음으로 된 순간에는 처음에 아픔을 조금 덜 느끼면서, 잠시 후면 그녀가 문을 두드릴 것이고, 잠시 후면 우리가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희망에 가득 찬 상상을 했다. 

 

p.258

34. 우주의 개처럼

하지만 퓌순 대신 시벨을 만났다. 나의 고통은 극에 달해 나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후 혼자 않아 있으면, 작은 우주선에 실려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으로 보내진 개처럼 외로울 것임을 바로 깨달았다. 

 

p.315

무게는 약간씩 다르겠지만, 이스탄불의 수백만 명이 반세기 동안 이 빵을 주식으로 먹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삶은 반복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매정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p.392

이제는 퓌순을 모방하면서 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있고, 그녀에게 느끼는 사랑의 힘으로 그녀의 가슴과 머릿속을 지나가는 모든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그녀의 입으로 말할 수 있고, 그녀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그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놀랍게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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