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글자, 글자사이, 낱말, 낱말사이, 글줄, 글줄사이, 단, 요스트 호훌리, 김형진 역, 2015, 워크룸 프레스
Detail of Typography, 2005, Jost Hochuli
p.9
독서과정 The reading process
책을 읽을 때 경험 많은 독자들의 눈은 글줄을 따라 휙휙 도약하며 달린다. 이때 안구는 0.2~0.4초 가량 고정됐다 움직이길 반족하는데, 이를 단속성운동saccade이라 부른다.....정보는 오직 안구가 고정됐을 떄만 흡수된다. 일반적인 글자 크기로 조판되었다고 가정할 때, 한 번의 단속성 운동을 통해 (로마자를 기준으로) 대략 5~10개의 글자, 또는 1~2개의 낱말이 눈에 들어온다....평균적으로 보자면 10개의 글자 중 안구가 정확하게 집중해 파악하는 건 3~4개 정도에 불과하다 나나머지 글자들은 흐릿하게 파악되거나 맥락에 따라 이해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의미가 명확해지지 않으면 눈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미 '읽은' 부분을 다시 점검한다. 이를 회귀 단속성 운동regression saccade이라 부른다.
p.18
프랑스 안과의사 에밀 자발의 1878년 실험을 통해 우리는 개별 소문자를 인식하기 위해 글자 전체를 볼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다. 어떤 글자인지 알아보는 데는 절반 윗부분만으로 충분하다[11]
p.18
눈이 감지하는 다른 모든 2차원 형태들처럼 글자 또한 광학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글자의 형식적 질을 판단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측정 도구가 아니라 건강한 인간의 눈이다. 따라서 글꼴을 디자인하는 데 염두를 두어야 할 지점은 시각적 환상이 아닌 시각적 실재라고 얘기하는 편이 옳다.
1. 원과 삼각형은 같은 높이를 지닌 사각형에 비해 작아보인다. 만약 같은 높이로 보이게 하려면 원과 삼각형을 위와 아래쪽으로 약간 늘려줘야 한다.
2.수학적으로 정확히 절반을 나누면 항상 절반 윗부분이 절반 아랫부분에 비해 커 보인다. 시각적으로 위아래 면적을 같에 보이도록 하려면 수학적 중앙이 아닌 그보다 약간 위 지점을 기준을 선을 그어줘야 한다. 이를 시각적 중앙optical center이라 부른다.
3. 같은 두꼐를 지닌 가로선과 세로선을 비교하면 항상 가로선이 더 두꺼워 보인다. 따라서 가로선을 세로선에 비해 약간 얇게 조정해야 두 선의 두께가 동일해 보이게 된다. 이 원칙은 직선뿐 아니라 원형에도 적용된다.
p.19
[11] 소문자의 윗부분을 가리면 글을 해독할 수 없다. 반면 아랫부분이 가려진 글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p.27
어떤 글이 읽기 힘들다고 했을 때 그건 글자사이 공간이 적절치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 모든 인쇄 매체에서 인쇄된 부분과 인쇄되지 않은 부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인쇄된 면은 일정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회색도를 유지해야 한다. 낱말과 글줄로 떼어 놓고 보더라도 각각 일정한 회색도를 지녀야 함은 물론이다.
p.33
공간을 빛으로 치환해 적용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잔여 글자사이 공간residual letterspace'과 같은 혼란스런 개념에 기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빛-인쇄되지 않은 백색 면의 밝기-은 위와 아래에서 글자들의 내부 공간과 그들 사이의 공간으로 흘러들어 간다. 우리로부터 내려오는 빛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빛에 비해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 현상을 구체적 예를 통해 설명해보자. 같은 산세리프 글꼴에 포함된 n과 u의 너비를 동일하게 보이게끔 하려면 n을 조금 더 넓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A와 V가 같은 각도로 벌어져 있다고 가정한다면 I와 A 사이에는 I와 V 사이에 비해 더 좁혀줘야 한다. 동일한 크기의 공간이라는 전제로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아. 그러나 같은 (양의) 빛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p.77
역자후기
이 비참함을 맛보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책을 두 번째 방식으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건 이 책을 저자 요스트 호훌리의 개인적인 미감이 반영된 하나의 제안으로서 읽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제안은 무척이나 무게 있고 설득력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을 개인적 취향이 아닌 보편적 원칙으로 읽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이 유혹을 물리치고 나면 우리는 이 책을 보다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마음에 드는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가독성을 위한 것이라는 빈약한 답변에 보다 그럴듯하고 뿌듯한 답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아름다운 것으로 이미 충분할 수 있다는 답 말이다.
정말이다. 나는 좋은 타이포그래피의 최종적인 목적은 가독성이 아닌 아름다움이라고 믿는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문장부호)는 좀 더 한국에 적합한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고, 문장부호에 대한 세밀한 실험을 볼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조판에 대한 좋은 이론서. 그리고 더 좋은 역자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