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배형민, 박정현 역, 2013, 동녘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Architecture, Discourse, and Modernity in America, 2002, Hyung Min Pai
들어가며
p. 16
글은 프로젝트 사이의 접착제가 아니라 독자적인 에피소드로 끼워져 있다. 우리는 모순을 피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읽을 수 있다. - 렘 콜하스・브루스 마우의 <S, M, L, XL>
1. 담론・대중건축・아카데믹 프로페션
p. 41
....건축가는 미국 사회의 변덕스러움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고 영속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바꾸어 말하면, 건축과 기념비는 자본주의 사회의 세속적인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정의되었다. 건축에 대한 이러한 정의의 가장 훌륭한 사례는 아니지만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개최된 여러 박람회, 즉 필라델피아 100주년 박람회에서부터 1893년 컬럼비아 세계박람회를 거쳐 1915년 파나마 퍼시픽 박람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p. 63
19세기에는 "기념비가 과거를 기억하게 해 주고 미래를 연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념비는 건축적 의미의 역사적인 연속성이 만들어 낸 사물"이라는 명제를 상기하자. 포트폴리오는 옛 기념비의 저장고이자 도판을 따라 생성될 새로운 디자인의 원천이었다. 포트폴리오는 역사의 연속성을 재생산했다. 1
대부분의 건축 그림처럼, 포트폴리오는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표기notation 형식이다. 다시 말해, 포트폴리오는 음악 악보처럼 다른 매체로 그 내용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2. 포트폴리오와 아카데미
pp. 67-70
보자르 체계에서 양식은 아날리티크의 문제였다. 즉, 건축 요소의 문제이며 이 요소를 통합된 설계안 속에 적절히 배치disposition하는 문제인 것이다. ....
아날리티크가 부분의 문제라면, 에스키스는 전체를 다루었다. 전체 디자인을 일컫는 콤포지션composition은 보자르 체계의 또 다른 핵심 개념으로 아날리티크의 대위선율로 간주될 수 있다. 더욱이 에스키스야말로 전체 건축 구도를 관장하는 기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에스키스를 통해서 학생들은 아날리티크나 스케일이 더 큰 클래스 B와 A 과제의 "파르티"를 재빨리 그리는 훈련을 받았다. 파르티parti라는 용어는 '편으르 들라, 결정하다'를 뜻하는 프랑스 숙어 'prendre parti'에서 나왔다. "파르티를 잘 '찾았다trouvé'"는 말은 전체를 잘 통합시킨 설계안을 칭찬하는 표현이다. 간단히 말해 에스키스는 설계 과제의 해법을 찾는 결정적인 행위이다.
3. 아카데믹 프로페션의 위기
p. 124
기능주의 계획과 평면 유형의 공존은 특히 박물관 건축에서 잘 나타난다. 박물관은 아카데미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 유형이면서도 합리주의적인 방법론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았다......이러한 "실용주의적" 접근은 보스턴 미술관의 사무관이었던 벤저민 아이브스 길먼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길먼의 에세이들은 1910년대 <월간 과학scientific Monthly>, <아키텍추럴 레코드>, 그리고 박물관 분야의 기관지 등 다양한 잡지에 실렸다. 길먼은 이 글들을 모아 1918년(2판은 1923년)에 <이상적인 박물관의 목적과 방법Museum Ideals of Purpose and Method>이라는 단행본으로 발간하였는데, 이 책은 한동안 박물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매뉴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도 "박물관 피로"를 최소화하고, 동선과 조명을 최적화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이 일군의 정형되된 평면과 공존했다.
4. 아카데미 기율의 균열
p. 129
킴벌과 형식주의자들 입장에서, 1916년 뉴욕의 포괄적인 지역지구 법규에 맞춰 등장한 계단식 마천루는 형태 원리에 입각한 근대 건축의 중요한 표본이었다. 여러 형태 원리 중에서 특히 "매스"가 새로운 마천루 미학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pp. 149-153
기능과 미학의 이원론이 지배했던 가장 유명한 미국의 프로젝트는 1932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근대 건축: 국제 전시회", 그리고 전시회와 함께 헨리 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출간한 책일 것이다. "국제주의 양식"은 1920년대 1930년대 동안 벌어진 모더니즘 논쟁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히치콕과 존슨은 양식이 제공하는 기율을 버리면, 무엇이든지 가능해지기 때문에 건축 공통의 기율을 상실하게 된다는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을 따랐지만 전통주의자와 모더니스트들이 공유했던 절충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p. 159
...건축의 미학적 가치가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의 문화가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애커먼은 건축 기율이 외부 현실과 거리를 둠으로써 사회의 이상을 건축에 구현할 수 있다는 아카데미즘을 거부했다. 전후위원회 보고서에서 이미 보았듯이, 아카데미 체제가 경제적・물리적・정치적 상황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강하게 비판했다. 학교를 갓 졸업한 건축가 초년병들이 실무를 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모든 가치들이 무가의미하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5. 프레더릭 애커먼, 루이스 멈퍼드, 그리고 형태의 위기
p. 164
기계가 도래하기 이전에 모든 건축 생산은 "수공예 기술, 세상을 직공의 솜씨로 판단하는 자세, 그리고 계획적인 행위로 특징지어졌다." 이 오랜 전통 안에서 건축가의 위치 때문에, 건축가들은 엔지이너들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엔지니어는 "근대적 관점과 과학적 방법"의 직접적인 산물이기 때문이 "직업의 선조"가 없었다....다른 한편, 건축가는 "장인master builder의 직계 후손"이었다. 따라서 과거의 무거운 짐, 즉 공예에 기반한 지식과 실천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건축가의 사고와 실천이 구현하는 물리적 실체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장인과 예술가의 기예로 표현되지만, 그 사유 과정은 수공예보다는 비즈니스에서 그 특성character이 발현되며, 예술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공학과 과학적 전망에서 그 속성quality이 도축된다." 이것은 물질적 현실과 이데올로기는 수공예 생산 방식 속에서 오랫동안 통합되어 있었는데 기계와 가격 체제가 이를 파괴했다는 것을 애커먼 특유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특성"과 "속성"의 구분은 사실상 제도와 정신을 나누는 베블런식 이분법의 새로운 비전이다. 정신 과정이 효력을 발휘하는 제도적 틀을 "특성"이라고 한다면, "속성"은 가장 기초적인 생물학적 특징, 즉 본능의 차원을 말한다. 이 본질적인 차원에서, "건축에 관련된 평가는 공학적 계산과 '과학적'분석을 다른다." 하지만 제도적인 차원에서, 건축 생산에 미치는 사회적인 힘은 비즈니스와 금전적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애커먼은 "건축이 창조하는 사건"을 "광범위한 영역에서 서로 충돌하는 목표와 목적들의 총체"라고 규정했다. 이는 곧 장인 본능・기계・가격 체제가 만나는 불안한 접점이다.
p. 179
(멈퍼드) 1930년대 말에 즈음해서는 시각적 최소주의와 사물 자체의 기능을 묘하게 결합시킨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근대 건축의 참된 상징은 시각적 상징의 부재이다. 어떤 구조체의 기능에 침투하고 참여함을써 효과적으로 얻을 것을 더 이상 표피에서 찾지 않는다. 일상적인 체험에서 포착되지 않는 물리적 과정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과정까지도, 실제 환경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감지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건축 자체가 눈에 띄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Mumford, The Culture of Cities, p. 421)
p. 184
애커먼과 멈퍼드는 근대 세계에서 일명 "형태의 위기"에 대응하는 두 가지 극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애커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건축의 위기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건축이 기율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면서 이 위기가 건축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입장은 다이어그램, 즉 사실과 외양의 분리를 향해 구체적으로 나간다. 한편 멈퍼드의 입장은 항상 모호하게 바뀌었고, 여러 번 자신을 부정해야 할 만큼 경솔했다. 그는 시대의 불만이라는 근대의 기본 모순에 매몰되었다. 건축이 사회를 반영한다면, 그 사회적 토대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건축을 보여 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애커먼과 멈퍼드 모두 지금의 현실을 재현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애커먼은 의식적으로, 전략적으로 모든 형상의 문제를 회피했다. 페브스너를 비롯해서 근대 건축을 도구적으로 접근했던 역사가들이 그랬듯이, 멈퍼드에게 진정한 형태는 외양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애커먼과 멈퍼드는 베블런이란 동전의 양면이었다.
6. 건축 잡지의 인식론적 프로젝트
7. 과학적 관리론과 다이어그램의 담론
p. 212
상품과 노동력의 순환을 통제하는 과학, 즉 "작업 공정routing" 전문가에 따르면, "고차원 계획"은 "생산의 리듬"을 확립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수학 법칙을 따르는 천체 운동처럼 대량 생산 공장의 문류는 보편적인 법칙을 따라야 한다. (John Younger, Work Routing in Production, NY: Ronald Press, 1930, pp. 98-99)
p. 213
1910년대 신체를 측정하고 규제하는 기법을 가장 열심히 개발한 것은 프랭크와 릴리언 길브레스 부부였다.
p. 218
파놉티콘의 유토피아가 이루어졌을 때, 즉 신체가 완벽하게 기능화 표준화 되었을 때, 공간의 기능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다.....파놉티콘 다이어그램이 공간을 표징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토피아, 즉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실제 건물로 설정되는 순간, 공간・빛・시간의 현실이 파놉티콘의 개념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벤담이 제안했던 "간단한 건축 아이디어"가 이에 상응하는 건축 평면으로 정작 그려질 수 있는지를 회의할 수밖에 없다.
다이어그램의 담론은 바로 건축의 아이디어, 즉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탄생했다. 공장의 배치에서부터 노동자의 통제까지, 다이어그램의 운영 원칙은 공간을 기능화하고 기능을 공간화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다이어그램은 생산 주체와 생산 단위, 즉 기능화된 노동자의 몸을 공간적인 영역과 짝을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p. 221
길브레스 부부는 신체에 부착된 광원의 움직임을 긴 노출 시간을 주어 한 장의 사진으로 찍었는데, 이런 류의 작업은 시간-동작 연구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를 "사이클그래프cyclegraph"라고 부르는데, 하나의 연속적인 곡선이 신체의 움직임을 단순한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p. 239
패터슨Mary Pattison에게 주택 계획은 거주자들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을 반영하여 단위를 나누고 통합하는 행위다. 따라서 주택 계획은 사람의 몸에 기반을 둔 생리학적 지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동선 계획은 사람의 움직임과 환경 사이의 공생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여겼다.
p. 249
공간적 신체는 건축에서 두 가지 기능이 있었다. 첫째, 일군의 기능적인 요구 조건을 개념화하는 매체며, 둘째, 공간 치수의 "자연스러운" 단위다. 따라서 건물의 물리적 요소 없이도 확장된 신체의 외곽선을 이용해 건축 공간을 표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이어그램은 건축가가 벽 기둥 지붕을 그리지 않고도 공간을 표상할 수 있는 수단이다.
pp. 251-252
...건축 다이어그램은 공간적 신체에서 출발한 다음 이를 벗어나 궁극적으로 기능을 지시하는 "버블" 공간 단위가 된다. 사회를 통제한다는 목표를 기꺼이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기능을 디자인하지는 않았다.
건축 담론이 신체를 다루기 시작했음으로써 그 시각적 체계가 사물을 투사하는 전통적인 기능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다이어그램은 원칙적으로 건물 이회의 대상과 개념을 표상한다. 공간을 점유한 사람의 움직임과 활동, 공기의 흐름, 햇빛의 각도 등 건물의 "기능"을 표상한다는 뜻이다. 즉 다이어그램이 은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과학적 관리론의 담론에서 중요했던 은유법은 건축 다이어그램의 담론에서도 널리 사용된 수사학이다. 예를들어 감옥 설계의 혁신에 대한 로버트 데이비슨의 발언을 보자. 감옥의 설계 과정은 "특정한 평면과 재료가 아니라 수행performance의" 조건에 대한 제안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예로 존 핸콕 칼렌더는 학교 계획을 논하면서, 학교는 "교육 과정 안에서 효과적으로 기능fuction"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행"이나 "기능"과 같은 상투어들은 결국 은유적인 수사어들이다. 과학적 관리론의 은유법이 신체와 기계를 짝지었다면, 건축에서는 신체 대신에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
8.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담론 체계
p. 297
사진-텍스트 복합포맷composite photographic text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담론 양식이 건축 잡지를 지배하게 되엇다. 전면 도판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텍스트가 본문을 지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진-텍스트 복합포맷은 사진・텍스트・평면・그림・다이어그램이 하나의 레이아웃 안에서 조합되는 것이 특징이다.
p. 303
이제 건축 잡지는 건축 지식 내부의 거울일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로 열린 창이 되어야 한다.
9. 건축 담론의 탈구
p. 320
다이어그램이 건축 평면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형태를 발생시키는 다이어그램이 있다면, 그 다이어그램은 이미 형태다.
p. 333
멈퍼드는 이미지가 글로써 기능하기를 원했다면, 히치콕과 존슨은 글을 위해 이미지를 사용했다.
p. 339
기디온에 따르면, 근대 건축은 다양한 사진의 파편으로부터 재구축된 통합체이다. 이러한 기디온의 논지와 함께 우리는 소크라티스 지오르지아디스가 "인식적 도구perceptive apparatus"라고 부른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필자는 이것을 카메라(관찰자)와 그 대상, 그리고 프레임과 현존presence이 교차하는 문제라 부르겠다.
pp. 344-345
넓으면서도 제약된 이 세계 속에 건축가는 어디에 있을까?....그 해답은 버클리 프로젝트의 극적인 배치도에 있다. 여기서 데프라델르는 새로운 캠퍼스를 내려다보는 조물주로 자리를 잡았다. 기술적인 비유를 하자면, 이것은 지도 제작자의 위치이다. 지도를 읽고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서, 지도 제작자는 땅을 내려다 보는 무한이라는 가상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
p. 372
건축을 아이디어에 묶어두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건축에 내재되는 딜레마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근대 세계에서 건축과 아이디어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다이어그램과 포트폴리오 연대기는 아니다. 제목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MIT Press에서 나온 박사논문이기에 각주가 매우 많았다.
다만 각주가 미주형태로 배치되어 있어서 각주의 내용을 몇 개 놓친 것이 있어서 아쉬웠다.
출처를 밝히는 것이 아닌 (할포스터처럼) 각주로 추가적인 확장을 하는 텍스트들은 각주를 본문에 넣는 것이 개인적으로 좋아보였다.
*헬름 홀츠에서 차용한 시각적 효과와 그 응용 사례, 존 발 펠트, <콤포지션 이론A Discussion of Composition>, 1903
매스 분석, 존 로빈슨, <건축 콤포지션의 원리Priciples of Architectural Composition>, 1908
파노프스키, 비트코버 그리고 푸코
데이비드 배런의 <디자인의 표시Indication in Design>
포버트 앳킨슨과 호프 베이거널의 <건축의 이론과 요소The Theory and Elements of Architecture>1926
Mumford, The Culture of Cities
Adorno, "Veblen's Attack on Culture"
아키텍추럴 레코드 177.8 * 247.6 포맷 1928년 215.9*279.4로
동선 아이더그램, 브루노 타우트, <새로운 주거Die Neue Wohnung> 1924
릴리언 길브레스, "부엌 계획의 응용한 동작 연구: 케이크 만들기Application of Motion Study to Kitchen Planning: Making a Cake" <아키텍추럴 레코드> 1930 3월
Mary Pattison, Principles of Domestic Engineering, NY: The Trow Press, 1915
캐서린 파머와 제인 캘러한 <공간과 동작 측정Measuring Space and Motion>
셰니의 <신세계의 건축>
히치콕 <근대 건축>
MoMA <국제주의 양식>, <기계 예술Machine Art>
멈퍼드 <갈색 시대>, <기술과 문명>
기디온 <공간, 시간, 건축>
모호이너지 <건축의 재료에 관하여Von Material zu Arkitektur>
Burgin "Looking at Photographs"
- Geord Peschken의 Karl Friedrich Schinkel 연구서에 있는 말이다. Dalibor Vesely, "Architecture and the Conflict of Representation," AA Files 8 (January 1985) p. 30에서 인용했다 [본문으로]
- John Hancock Callender, "New Day Elementary Schools: A study of Architectural Developments Keeping Pace with the Requirements of Progressive Education", Architectural Forum 59 (December 1933) p. 481 [본문으로]